오는 6월 조기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세종시 집값이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대선 예비 후보들이 대통령 집무실이나 국회 등 주요 기관을 세종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또다시 쏟아내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세종시는 지난해 전국 시도 중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내렸는데, 조기 대선 정국을 맞아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4월 들어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연초 대비 2배 수준으로 늘고, 종전보다 수억 원 오른 매매 계약이 줄을 잇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데자뷔 현상 같다”는 말이 나온다. 앞서 총선이 치러진 2020년 정치권에서 행정 수도 이전론이 퍼지면서 세종 아파트값이 급등했던 분위기가 재연되고 있다는 뜻이다. 2020년 세종시 아파트값은 47%나 뛰었다. 그러나 행정 수도 이전이 무산되고, 집값 급등에 따른 피로감이 확산하며 2022년부터 작년까지 20% 가까이 떨어졌다.
선거 같은 대형 정치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세종시 부동산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행보를 보이자 “세종시 집값은 정치 테마주나 다름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격 급등기에 투기성 매수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애꿎은 실수요자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작년 하락 1위 세종시, 신고가 속출
세종시는 지난해 아파트값이 4.2% 내리면서(KB부동산 기준) 전국 17개 시도 중 상승률 꼴찌를 기록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거래 침체와 집값 하락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4월 아파트 거래 증가와 맞물려 호가와 실거래가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2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이날까지 세종시에서 신고된 매매 거래는 569건으로 올 1월(298건) 대비 90.9% 증가했다. 아직 신고하지 않은 거래와 4월 말까지 추가되는 계약을 더하면 최종 거래량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세종시 부동산 매수자 중 타 지역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월 22.6%에서 4월엔 35.7%로 급증했다. 실수요뿐 아니라 외지의 투자 수요가 가세했다는 뜻이다.
정부세종청사 인근 단지를 중심으로 신고가 거래도 잇따르고 있다. 어진동 한뜰마을6단지의 경우 지난 1일 2건, 지난 5일 1건 등 이달에만 3건의 신고가 계약이 체결됐다. 이 단지 전용 140㎡는 두 달 만에 1억2500만원 올라 지난 5일 15억4000만원에 신고가로 계약됐다. 이 외에도 반곡동 수루배마을1단지 전용 96㎡는 지난 6일 직전 거래보다 3억원가량 오른 9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나성동 나릿재마을2단지(11일), 새롬동 새뜸마을13단지(18일)에서도 신고가 거래가 나왔다.
아파트 매수 수요가 늘면서 추가 가격 상승을 예상한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는 모습도 나타난다. 아실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세종시 아파트 매물은 1만394건에서 8591건으로 17.4% 급감했다. 전국 시도 중 감소율이 압도적 1위다.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 다시 적용될 수도 있어”
◇2017·2020년 급등 이후 하락 반복되나
세종시 집값이 정치권 공약에 급등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세종시로 행정 수도를 이전하겠다”는 일명 ‘세종 천도론’을 들고나오면서 세종시 집값은 1년간 47% 뛰었다. 그해 전국 평균(10.3%)을 4배 이상 초과한 ‘역대급’ 상승률이었다. 그러나 과도한 집값 상승에 따른 피로감이 커졌고, 행정 수도 이전 공약이 실현되지 않으면서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떨어졌다. 2022년 한 해에 13.3% 급락한 걸 포함해 지난해까지 3년간 19.9% 하락했다.
앞서 2017년 대선 때에도 여야 후보들이 국회 세종 분원 설치, 행정자치부 이전 같은 공약을 제시하면서 세종시 집값이 요동쳤다. 그해 세종시 집값은 3.1% 올라 전국 평균 상승률(1.4%)을 배 이상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최근 세종 주택시장엔 실수요자 외에 투기 수요도 몰리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단기간에 가격이 뛰면 실수요자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이런 양상이 계속되면 2022년 해제됐던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가 다시 적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