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퀸즐랜드대의 코로나 백신. 인체에 달라붙는 스파이크 단백질에 에이즈 단백질(붉은색)을 붙여 구조를 안정시켰다. /호주 퀸즐랜드대


코로나 백신이 에이즈에 발목 잡혔다. 호주 정부는 지난 11일 “퀸즐랜드대와 바이오 기업 CSL이 개발 중인 코로나 백신이 임상 시험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유발했다”며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 백신이 에이즈 양성 오진 유발

백신은 병원체를 약하게 경험하고 전력을 미리 파악하는 원리다. 인체는 나중에 실제 적군이 침투하면 바로 그에 대항하는 면역 단백질인 항체를 분비해 무력화한다.

제약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백신의 공략 목표로 삼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체 세포의 ACE 2 수용체에 결합하고 융합해 세포 안으로 침투한다.

퀸즐랜드대가 개발 중인 코로나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허가받은 다른 백신은 스파이크 설계도를 인체에 주고 스스로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원리라면, 퀸즐랜드대는 바로 스파이크 단백질을 주입하는 방식이어서 면역반응을 더 잘 유도할 것으로 기대됐다.

호주 과학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와 융합하기 전 상태로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때 스파이크는 단백질 구조가 불안정했다. 호주 연구진은 단백질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이 80개 연결된 작은 단백질 조각을 밑에 붙여 구조를 안정시켰다. 이 단백질은 에이즈 바이러스에서 가져왔다. 단백질만으로 에이즈가 발생할 우려는 없었다.

문제는 진단이었다. 호주 연구진이 임상 시험에서 코로나 백신을 인체에 투여하자 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 결합하는 항체뿐 아니라, 구조 안정을 위해 사용한 에이즈 바이러스 단백질에 대한 항체도 생성됐다. 그 결과 백신 주사를 맞은 사람이 에이즈 양성으로 잘못 진단받는 결과를 낳았다. 호주 정부는 코로나를 예방하려다 에이즈 진단 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고 백신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퀸즐랜드대의 백신은 지난 7월 216명 대상 임상 1상 시험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강력한 면역반응을 보였다.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었다. 일부에서는 백신에 들어간 스파이크 단백질을 새로 설계해서 에이즈 오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퀸즐랜드대 백신 개발을 이끈 폴 영 교수는 그 경우 1년 이상 개발이 지연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루가 급한 상황에서 1년을 더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호주 연구진이 코로나 백신 연구를 하고 있다. 임상시험 도중 백신이 에이즈 오진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개발이 중단됐다./호주 퀸즐랜드대


◇국제기구는 계속 지원 의사 밝혀

퀸즐랜드대의 코로나 백신은 그동안 국제기구인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의 지원을 받았다. CEPI는 전 세계 9그룹의 코로나 백신 개발을 지원했는데, 이 중 모더나와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이 임상 시험에서 최종 효능을 입증했다. 미국 노바백스의 백신도 임상 3상 시험을 시작했다. CEPI는 퀸즐랜드대가 개발한 백신 기술이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보고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모더나는 화이자와 마찬가지로 스파이크 유전 정보를 담은 RNA로 백신을 만들었고, 아스트라제네카는 스파이크 유전자를 인체에 무해한 다른 바이러스에 넣고 인체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러시아도 같은 방식의 백신을 개발했다. 반면 미국 노바백스는 호주처럼 스파이크 단백질을 대량생산해 백신으로 사용했다.

이번 개발 중단으로 호주 정부의 코로나 백신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호주 정부는 퀸즐랜드대, CSL과 5100만 도스(dose·1도스는 1회 접종분)의 백신을 구매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호주 정부는 11일 75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취소했다. 대신 미국 노바백스와 새로 백신 공급 계약을 맺고, 이미 계약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물량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