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잠수에서 촬영한 다양한 어린 물고기들./JEFF MILISEN

누구나 별처럼 빛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스쿠버 다이버들이 밤바다에서 별처럼 아름다운 어린 물고기들을 발견했다. 실험실 표본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데이비드 존슨 연구원과 스쿠버 다이버인 제프 밀슨 공동 연구진은 지난달 30일 국제 학술지 ‘어류학과 파충류학’에 야간 잠수에서 표본과 전혀 다른 모습의 살아있는 어린 물고기 60여 종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어린 물고기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면 서식지와 행동을 새로 규명해 멸종 위기 어류를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야간 잠수에서 어린 물고기 실제 모습 확인

어류는 발생 단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암컷이 낳은 알에 수컷이 정자를 뿌리면 수정란이 탄생한다. 수정란에서 처음 깨어난 어린 물고기는 자어(子魚, larva)로 불린다. 자어가 자라면 치어(穉魚, juvenile fish)가 되고, 이후 다 자란 성어가 된다.

물고기의 발달 단계. 알(맨 아래)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수정란, 자어, 치어를 거쳐 성어로 자란다. 자어는 영양분을 제공하는 난황(주황색)을 몸에 달고 있다.

치어는 크기가 작을 뿐이지 성어와 비슷한 모습이다. 자어는 딴판이다. 어미 뱃속에서 자라는 동물은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제공받지만 알로 태어나는 물고기는 그럴 수 없다. 대신 물고기는 알에 영양물질을 매단다. 자어는 수정란에 있던 영양 덩어리인 난황을 그대로 달고 있다.

제프 밀슨과 같이 야간 잠수를 하는 스쿠버 다이버들은 조명을 들고 밤바다로 들어간다. 물속에 들어가면 조명을 보고 온 수많은 작은 생명체를 볼 수 있는데, 그 중에는 밤에만 해수면 가까이 이동하는 자어들도 있다. 손톱 정도 크기에 아직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자어들은 천적을 피하기 위해 바다 밑바닥에 숨어 있다가 밤에 200m씩 떠올라 수면 가까이에서 먹이를 잡는다.

스쿠버 다이버들은 이때 촬영한 자어들의 모습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는데,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어류 전시책임자인 존슨 연구원이 이를 보고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야간 잠수에서 촬영한 홍투라치(Zu cristatus) 자어(왼쪽)와 표본(오른쪽)./JEFF MILISEN

◇채집 과정에서 사라진 신체도 확인

연구진은 스쿠버 다이버들이 채집한 어린 물고기의 DNA를 분석해 표본실의 어떤 물고기와 같은 종류인지 확인했다. 어린 물고기들은 다 자란 어른 물고기는 물론, 표본과도 완전히 다른 모습인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홍투라치(Zu cristatus)다. 야간 잠수에서 확인한 홍투라치 자어는 몸에 마치 스파게티 같은 기다란 지느러미를 갖고 있었다. 흰 점들이 있는 이 지느러미는 표본에서는 볼 수 없었다. 채집 과정에서 쉽게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홍투라치 자어는 이 지느러미를 해파리의 촉수처럼 펼쳐 천적을 쫓는다고 추정했다.

야간 잠수에서 촬영한 수염 드래건피시(Aristostomias)의 자어(왼쪽)와 표본(오른쪽)./ JEFF MILISENlarva

’수염 드래건피시(Aristostomias)’ 역시 채집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바로 내장이다. 이 물고기 자어는 내장이 마치 와인따개의 타래송곳처럼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연구진은 내장이 몸 밖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소화를 돕거나 아니면 천적을 당황하게 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제시됐다.

◇흰색 표본이 화려한 파란색으로 밝혀져

채집한 물고기는 에탄올에 담가 보존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색을 잃는 경우가 많다. 자어들도 그랬다. ‘삼점 오른눈 가자미(Samariscus triocellatus)’ 자어는 이번 연구에서 몸이 파란색이고 흰색과 노란색 점들이 있는 지느러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야간 잠수에서 촬영한 가자미(Samariscus triocellatus)의 자어(왼쪽)와 표본(오른쪽)./ JEFF MILISENlarva

표본실 자어는 전체가 하얀색이었다. 연구진은 현란한 술 장식이 천적의 눈을 어지럽게 해 도망가는 데 도움을 준다고 추정했다. 줄무늬뱀의 흰 줄들도 같은 기능을 한다.

‘세발치(Bathymicrops)’ 자어 역시 창백한 흰색의 표본이나 온통 갈색인 다 자란 물고기와 달리 어릿광대처럼 흰색과 주황색 땡땡이 무늬가 있는 파란색 물고기였다. 표본의 가슴 지느러미는 부드럽고 생기가 없었지만 실제 자어는 흰 점들과 탄탄한 가시가 있는 가슴 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펼친 모습이었다. 역시 화려한 색으로 천적의 눈을 어지럽게 한다고 추정됐다.

야간 잠수에서 촬영한 세발치(Bathymicrops)의 자어(왼쪽)와 표본(오른쪽)./ JEFF MILISENlarva

◇어린 물고기의 실제 행동도 새로 규명

자어의 행동도 새로 밝혀졌다. ‘줄무늬 붕장어(Ariosoma fasciatum)’ 자어는 길쭉한 원통형 성어와 달리 평평한 형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야간 잠수에서 자어 역시 어른처럼 온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헤엄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야간 잠수에서 촬영한 줄무늬 붕장어(Ariosoma fasciatum)의 자어(왼쪽)와 표본(오른쪽)./ JEFF MILISENlarva

‘새다래(Brama japonica)’ 자어는 해파리에 올라탄 모습이 포착됐다. 자어들은 종종 해파리 촉수에 몸을 숨기기도 하지만 해파리에 올라타 이동하는 모습은 처음 확인됐다.

야간 잠수에서 촬영한 새다래(Brama japonica)의 자어(왼쪽)와 표본(오른쪽)./ JEFF MILISEN

연구진은 자어들의 실제 모습과 행동을 파악하면 멸종 위기 어류의 보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어린 물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아야 적절한 보존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밤바다로 뛰어든 스쿠버 다이버들이 어류 연구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