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착륙한 우주인을 보호해 줄 센서가 지구에서 산불 진화에 나선 소방관의 목숨을 구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지난 27일(현지 시각) “우주인들이 인체에 해로운 달 먼지 수치를 파악하기 위해 개발한 센서 기술이 최근 지구에서 먼저 상용화돼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우주인을 보호하는 카나리아 센서
나사는 2024년에 다시 우주인을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2년 만에 다시 인류가 달에 발을 딛는 것이다. 달 궤도에 루나게이트란 우주정거장을 세우고 달 표면의 유인 우주기지도 계획하고 있다.
2017년 미국 덴버에서 창업한 루나 아웃포스트는 아르테미스 우주인을 위해 달의 공기에 있는 미세 먼지를 감지하는 센서인 ‘스페이스 카나리아’를 개발했다. 카나리아 센서는 록히드 마틴 스페이스가 개발 중인 달 우주정거장의 우주인 거주 시설에서 시험하고 있다. 문 바로 위에 달린 센서는 우주인이 지나갈 때 달 먼지가 있는지 확인해 공기 정화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다.
루나 아웃포스트의 카나리아 센서는 19세기 유럽의 광부들이 은 탄광에 카나리아가 든 새장을 가져간 것에서 착안해 이름을 지었다.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를 통해 메탄이나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가스를 먼저 감지한 것이다. 달에서 센서는 지구의 카나리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구에서도 미세 먼지가 몸에 해롭지만 달의 먼지는 더 치명적이다. 달에서는 태양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달 표면에 쏟아진다. 이로 인해 달의 먼지는 강력한 정전기를 띠면서 우주복이나 장비에 마구 달라붙는다.
특히 지구의 흙먼지는 대기 마찰로 둥글어지지만 달은 대기가 없어 사방이 뾰족하다. 이 상태로 우주인이 들이마시면 폐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다. 50여 년 전 미국의 아폴로 프로젝트로 달에 간 우주인들은 달 먼지를 마시면 지구에서 꽃가루 알레르기 반응으로 유발되는 건초열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소방관 구하고, 가스 누출도 감시
나사는 우주 센서가 극한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개발됐고 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적응력이 뛰어나 지구에서 다양한 곳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주 카나리아는 달에 가기 전 이미 성능을 입증했다. 이 센서가 최근 ‘카나리아S’란 이름으로 미국 15개주에서 다양한 곳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S는 태양전지와 일체화된 형태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산림청은 카나리아S 센서를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했다. 루나 아웃포스트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줄리안 사이러스는 “소방관은 수십 년 동안 일산화탄소 중독 증상을 겪었다”며 “카나리아 센서는 일산화탄소 농도를 실시간 측정해 소방관에게 경고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덴버시는 학교 주변의 대기 오염 상태를 측정하는 데 카나리아 센서를 활용하고 있다. 1분에 한 번씩 업데이트되는 센서 측정 정보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제공돼 대기오염에 대한 교육자료로 활용된다. 석유, 가스 업체들은 이 센서로 가스 누출 여부를 측정하고 있다. 사이러스 COO는 “민간과 공공이 함께 우주기술을 개발하면 지속가능한 달 탐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혁신기술의 보고가 된 달 탐사
과거 달 탐사에서 개발된 우주기술도 지구에서 다양하게 활용됐다. 아폴로 달 착륙 프로젝트 과정에서 개발된 3000여건의 특허 중 1300여건의 특허가 민간에 이전돼 상용화됐다. ‘미국의 새로운 상품은 곧 세계 최대의 발명가 집단인 나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폴로 우주인이 입은 옷은 테플론으로 코팅한 유리 섬유로 만들었다. 달 착륙 2년 전인 1967년 아폴로 1호에서 화재사고가 나자 화염에 이기는 우주복을 만들기 위해 개발된 옷감이다. 아폴로 이후 대형 건축물에 텐트형 지붕을 덮을 때 많이 사용된다.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에도 적용됐다. 나사는 “철골이 필요 없고, 햇빛은 투과하면서 열에는 강해 에너지 절약에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달 표면의 토양을 채취할 때 쓴 시추장치는 전선을 연결할 수 없어 무선으로 개발됐다. 이는 가정용 무선 드릴, 무선 다리미를 낳았다. 달 표면을 찍은 사진의 해상도를 높이던 기술은 병원의 자기공명영상(MRI)에 활용됐다.
가정에 흔한 정수기는 우주에서 물에 들어 있을지 모를 중금속을 걸러내기 위해 개발된 이온여과장치에서 비롯됐다. 우주복 안에 입은 속옷까지 민간에 이전됐다. 바로 체온의 급상승을 막아주는 냉각 속옷이다. 현재는 자동차 경주나 원자력발전소, 조선소처럼 열에 노출되기 쉬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역시 지구에 다양한 혁신기술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먼저 우주인터넷을 생각할 수 있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서는 궤도선과 착륙선, 이동형 로버를 달 인터넷으로 연결할 예정인데 극한 우주에서 개발된 통신기술은 지구에서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노키아는 나사와 협약을 맺고 내년 달에 4G(4세대) 이동통신을 시험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27일 아르테미스 약정에 가입하면서 미국 주도의 유인 달 탐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달 탐사에서 개발된 혁신기술을 지구에서 활용할 길도 열렸다. 이미 내년 발사할 달 궤도선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한 우주인터넷 장비를 탑재해 나사와 공동 시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