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를 만드는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전자현미경 사진. 유전물질인 DNA는 대부분 세포핵에 있지만, 미토콘드리아에도 0.1% 정도가 있다./CNRI

국내 연구진이 치명적인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세포 에너지 기관인 미토콘드리아 DNA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나중에 아기에게 치명적인 유전절환이 발생한다. 체외수정에서 정상 난자와 돌연변이 난자를 융합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유전적으로 부모가 세명이 돼 윤리 논란이 있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 전 단장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미토콘드리아 DNA의 아데닌(A) 염기 교정 도구인 ‘TALED(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linked Deaminase, 전사 활성 유사 탈아미노 효소)’를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최고 학술지인 ‘셀’에 실렸다.

◇모계 통한 치명적 유전질환 극복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 밖에 있는 작은 기관으로, 에너지 생산을 맡고 있다. 유전물질인 DNA는 대부분 세포핵에 있지만, 미토콘드리아에도 0.1% 정도가 있다. 아기는 엄마의 난자로부터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는데, 여기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5000명에 한 명 꼴로 뇌나 근육, 심장이 심각하게 손상되는 유전질환이 발생한다.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는 암·당뇨병·노화 관련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IBS 연구진은 미토콘드리아에서 아데닌(A) 염기를 교정하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해 점 돌연변이 39개(43%)를 고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DNA는 아데닌·구아닌(G)·시토신(C)·티민(T)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로 구성된다. 이 염기들이 배열된 순서에 따라 생명현상을 좌우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미토콘드리아에 발생하는 병원성 돌연변이 95개 중 90개는 DNA의 염기 하나가 다른 종류로 바뀐 이른바 ‘점 돌연변이’다.

미토콘드리아 내부로 전달된 TALED가 아데닌(A)의 탈아미노화 반응을 일으켜 이노신(I)으로 바꾼다. 이후 DNA 수선 과정 또는 복제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구아닌(G)로 치환된다./IBS

이론적으로 점 돌연변이를 원래의 염기로 교정하면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을 치료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20년 미토콘드리아 DNA의 시토신 염기를 티민으로 교정했지만 점 돌연변이 9개(10%)만 고칠 수 있었다. 이번에 치료 대상을 4배나 늘린 것이다.

논문 제1저자인 조성익 IBS 연구원은 세균에서 유래한 효소로 아데닌에서 질소와 수소로 이뤄진 아미노기를 떼어 내고 구아닌으로 바꿨다. 인간 미토콘드리아 DNA의 아데닌 염기 교정에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나아가 특정 단백질을 효소에 붙이면 시토신과 아데닌의 염기 교정을 동시에 일으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

◇난자 융합하는 세 부모 시술 대안 가능

이번 염기 교정 기술은 그동안 윤리 논란을 일으켰던 이른바 ‘세 부모 아기’ 시술 없이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지난 2016년 미국에서는 세 명의 DNA를 결합하는 새로운 체외수정 시술로 아기가 태어났다. 유전적으로 부모가 세 명인 아기이다.

당시 연구진은 리씨증후군이라는 유전병을 앓는 요르단인 여성을 위해 세 부모 체외수정 시술을 했다. 이 병은 미토콘드리아 DNA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나중에 아기에게 신경계 손상을 유발한다. 연구진은 여성 환자의 난자에서 세포핵을 추출한 뒤, 미리 핵을 제거해놓은 다른 여성의 건강한 난자에 주입했다. 이렇게 재조합한 난자와 환자 남편의 정자를 수정시켰다.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질환 막는 세 부모 아기 시술.

영국 의회는 2015년 세 부모 아기 시술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불법이어서 멕시코에서 시술이 이뤄졌다. 의학계에선 난치병 환자가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지만, 아기가 부모 아닌 사람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데 대한 거부감도 컸다. 세 부모 아기는 세포핵 DNA는 친부모로부터, 미토콘드리아 DNA는 난자를 기증한 여성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이번 미토콘드리아 염기 교정 기술은 이런 논란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유전질환 치료 외에 농작물 개량에도 활용할 수 있다. 논문 교신저자인 김진수 전 IBS 연구단장은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던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며 “TALED는 다른 세포소기관인 엽록체에서도 작동 가능해 식물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만큼, 바이오제약·생명공학·농림수산업·환경 산업에도 폭넓게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식물에서 광합성을 담당하는 엽록체도 DNA를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엽록체 DNA를 교정하면 식물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