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루이스 브루스 컬럼비아대 교수(왼쪽부터), 문지 바웬디 미 매사추세츠공대 교수, 알렉세이 예키모프 전 나노크리스탈 테크놀로지 연구원.

올해 노벨화학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크기의 반도체 ‘양자점(퀀텀닷)’을 개발해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산업의 혁신을 이끈 화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이 만든 퀀텀닷은 현재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 TV와 태양전지 등에 활용되고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4일(현지 시각) 문지 바웬디(62) 미 매사추세츠공대 교수, 루이스 브루스(80) 컬럼비아대 교수, 알렉세이 예키모프(78) 전 나노크리스탈 테크놀로지 연구원 등 3인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노벨 위원회는 “이들의 연구는 나노 기술에 색을 더했다”고 했다.

이들이 개발한 퀀텀닷은 수백~수천개의 원자로 이뤄진 수 나노미터(1나노=10억분의 1m) 크기의 초미세 반도체 입자다. 예키모프 박사는 1980년 러시아 바빌로프 국립광학연구소에서 최초의 퀀텀닷인 엽화 구리 나노 입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입자는 반도체의 성질을 갖고 있는데 열이나 빛, 전기 자극을 전달하거나 빛을 내는 특성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브루스 교수는 1983년 안정적으로 퀀텀닷 결정을 생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브루스 교수의 제자인 바웬디 교수는 1993년 크기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최초의 ‘고품질’ 퀀텀닷을 생산했다. 이들의 연구는 2010년대 들어 퀀텀닷 디스플레이가 등장하면서 활발하게 응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2011년 퀀텀닷 디스플레이가 처음 만들어졌다. 기술 상용화에는 28년, 노벨상 수상까지 40년이 걸린 셈이다.

물질은 크기와 상관없이 성질이 같다. 큰 나무나 조그마한 나무토막이나 다를 게 없는 식이다. 하지만 물질이 나노 단위로 작아지면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 현상이 생겨난다. 퀀텀닷 역시 기존 반도체와는 전기적, 광학적 성질이 다르다. 다양한 빛을 내는 물질과 달리 입자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색을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특성이 생긴다. 퀀텀닷 크기를 조정하면 이론적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색상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퀀텀닷을 활용한 디스플레이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의 단점인 버닝(화면 잔상) 현상이 없고, 수명도 훨씬 길어진다. 삼성전자는 퀀텀닷 필름을 붙인 QLED TV를 주력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바웬디 교수의 제자인 김성지 포스텍 화학과 교수는 “퀀텀닷은 태양전지, 광센서, 레이저, 바이오 이미지, 양자통신 등 폭넓은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퀀텀닷 대량 생산에 성공한 현택환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장은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아쉽게 수상하지 못했다. 현 단장은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이 상용화에 도전했기 때문에 이들의 연구가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수상자 명단이 발표 예정 시간보다 3시간가량 앞서 유출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AP통신 등은 “(노벨위원회가) 수상자 명단이 담긴 보도자료를 실수로 일찍 보냈다”고 전했다. 1901년 노벨상이 시상식이 시작된 이래 주최 측의 실수로 수상자가 사전에 유출된 것은 처음이다. 한스 엘레그렌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매우 불운한 일이 일어났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 노벨상 수상자 선정 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