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바이오 HLB의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보완 요구서를 받자, FDA 승인의 높은 벽을 국내 제약 바이오 업계가 다시 한번 실감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 진출에 성공할 국내 신약이 나올지 관심이 모인다. 지난해 FDA 승인을 받은 셀트리온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짐펜트라’와 GC녹십자의 면역결핍증 치료제 ‘알리글로’가 올해 본격적으로 미국 판매를 시작하고, 오는 8월에는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가 FDA 승인 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다.
◇셀트리온·GC녹십자 본격 美 진출
많은 제약사들이 FDA 승인에 도전하는 이유는 미국 시장의 규모가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고, 일단 승인을 받으면 다른 국가에 진출할 때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의약품 시장 조사기관인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의 의약품 시장 규모는 4290억달러(약 572조원)에 달한다. FDA 승인을 계기로 ‘블록버스터(연간 매출 1조원 이상인 의약품)’ 신약이 종종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아직 블록버스터가 나온 적 없고, 연간 총매출이 1조원 이상인 회사도 10곳이 되지 않는다.
까다로운 FDA 승인 절차를 통과한 국산 신약은 아직 10종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해 승인받은 셀트리온의 짐펜트라와 GC녹십자의 알리글로를 포함해 FDA 승인을 받은 국산 신약은 총 8종이다. 2003년 LG화학의 항생제 ‘팩티브’가 국산 의약품 최초로 FDA 허가를 받은 후 20년 동안 거둔 성과다.
2010년대 들어 2~3년에 한 번꼴로 FDA 승인 약품이 나오면서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예컨대 2022년 한미약품의 롤론티스가 FDA 승인을 받은 후 지난해 셀트리온의 짐펜트라, GC녹십자의 알리글로가 뒤를 이어 약 1년 사이에 3종의 신약이 승인을 획득한 것이다. 짐펜트라는 지난 3월 미국에 출시됐고, 알리글로는 오는 7월 본격적으로 판매된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업이 개발한 다수의 신약이 올해 상업화 단계에 진입하고, 글로벌 신약도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연구개발 기술력이 점차 높아지면서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도 이제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올해도 FDA 승인 국산 신약 나올까
현재 FDA 승인 절차를 밟고 있는 국산 신약은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다. 오는 8월 허가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지난 2월 FDA로부터 우선심사 승인을 받아 그보다 일찍 승인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렉라자는 유한양행이 2018년 존슨앤드존슨에 기술 이전한 의약품으로, 미국 출시 후 유통 등은 존슨앤드존슨이 맡게 된다. 렉라자가 승인을 받을 경우 국내 제약사가 후보 물질을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대형 제약사)에 기술 이전해 제품 출시까지 이어진 첫 사례가 된다. 증권가에서는 렉라자가 FDA 승인을 받으면 유한양행이 올 한 해에만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으로 1800억원을 수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산 항암제로는 처음으로 FDA 승인을 기대했던 HLB는 FDA로부터 보완 요구 서한(CRL)을 받은 이유에 대해 27일 밝혔다.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의 안정성이나 약효 등에는 문제가 없으나 파트너사인 중국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 공장 설비(Facility)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HLB 관계자는 “미국 연방 규정집에 따르면 ‘설비’는 위생 시설, 공조 시설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완 사항이 중대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회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빠른 시일 내에 재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제약사들은 2000년대 약가 인하 이후 본격적인 글로벌 신약 R&D(연구개발)에 들어섰고, 올해부터는 대형 신약들의 미국 출시가 기대된다”며 “작은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전문 의약품 시장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과 유럽으로의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