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2024 올해의 혁신’에 1회 접종으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6개월간 예방할 수 있는 주사제 ‘레나카파비르’가 선정됐다. 수십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HIV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매년 100만명 이상의 감염자를 발생시키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HIV에 감염되면 면역체계가 무너지고 심각한 경우 목숨을 잃게 된다.
◇1회 접종으로 100% 예방 효과
레나카파비르는 글로벌 제약사 길리어드의 주사제로 아직 시중에는 출시되지 않은 약물이다. 사이언스는 이 약물이 지난 6월 발표된 아프리카 소녀와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서 HIV 100% 예방효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또 이후 4개 대륙에서 실시된 임상 시험 결과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다양한 성별의 사람들에게서도 99.9%의 효능이 확인됐다.
사이언스는 “레나카파비르의 임상 결과는 놀랍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선정 이유는 아니다”라며 이 약의 기반이 된 기초 연구의 가치를 짚었다. 레나카파비르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보호하는 HIV 캡시드 단백질을 경화시킴으로써 바이러스 복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학계에서는 캡시드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것이 비실용적이라는 인식이 다수였는데, 레나카파비르의 성공으로 다른 바이러스 질환 치료에 대한 연구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레나카파비르는 내년 중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길리어드는 아프리카 등 HIV 예방이 시급한 지역에서 저렴한 복제약 판매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CAR-T 치료제, 스타십 ‘젓가락 잡기’ 등 선정
사이언스는 ‘올해의 혁신’으로 9가지 연구 성과와 기술을 더 꼽았다. 키 루푸스, 경피증, 다발성 경화증 및 기타 자가 면역 질환 치료에 활용될 수 있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 T(CAR-T) 치료제의 발전이 두 번째로 꼽혔다. 사이언스는 “CAR-T 치료제는 올해 새로운 접근방식을 통해 중증 환자에게서 놀라운 개선 효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CAR-T 치료제는 특정 세포를 공격해 다른 정상 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문제 세포를 치료할 수 있는 특징을 지녔다. 올해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 등 주요 학술지에는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에게 CAR-T세포 치료제를 투여해 효과를 확인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게재됐다.
1단 추진체 회수에 성공한 스페이스X의 기술도 ‘올해의 혁신’에 선정됐다. 높이 120m의 현존 최대 우주선인 스타십은 지난 10월 5번째 시험 비행에서 1단 추진체 회수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1단 추진체인 ‘수퍼헤비’는 발사와 함께 고도 70km까지 올라갔다가 수직으로 하강해 발사탑 인근의 거대한 로봇 팔에 안착했다. 스타십의 재사용이 가능해지면 현재 1억달러(약 1355억원)가량으로 추정되는 우주선 발사 비용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고,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밖에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이용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초기 은하 발견, 미국 그린라이트 바이오사이언스(GreenLight Biosciences)의 RNA 간섭(RNAi)현상을 이용한 살충제, 진화 연구에 혁신적인 길을 연 새로운 유형의 자성 발견, 복잡한 생명체의 진화 미스터리를 풀 단서가 될 화석 발견, 알터마그넷(altermagnet)의 개발, 대륙 이동이 아닌 맨틀 소용돌이가 현재 지구의 모습을 형성했다는 연구 등이 ‘올해의 혁신’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