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걸프스트림3에는 특수 레이더가 탑재돼 있다. ‘무인 항공기용 합성 레이더(UAVSAR)’로 부르는 장비다. 레이더는 크지 않지만 정해진 범위를 항공기가 여러 번 오가면서 모든 관측 데이터를 합성해 큰 레이더에 맞먹는 효과를 내는 첨단 기술이다. 지면으로 다양한 파장의 신호를 보내고, 반사된 데이터를 수집해 3D(차원)에 가까운 이미지를 구현한다. 지진, 화산, 빙하 이동 등의 현상으로 인한 지형 변형을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
이 기술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그린란드 빙상(氷床·대륙 빙하) 밑 ‘비밀 기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할 경우, 비밀 기지 처리도 논란이 될 수 있어서다.
◇감춰진 용도를 덴마크도 몰라
NASA의 걸프스트림3는 지난해 그린란드에서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빙하 표면에서 약 30m 깊이에 별사탕처럼 생긴 잔해가 포착된 것이다. 당시 NASA 연구자는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다”고 했다. 약 60년간 빙하 아래 묻혀 있는 군사기지 ‘캠프 센추리’였다.
캠프 센추리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임기였던 1959년 착공한 그린란드 빙하의 미군 기지다. 당시 미국은 그린란드를 소유한 덴마크 정부에는 과학 연구용 기지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숨긴 목적은 소련을 공격하기 위한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아이스웜(Iceworm)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빙하 아래 격자형으로 터널 21개(총길이 3㎞)를 뚫고 레일을 깔아 600기에 달하는 핵미사일을 보관, 이동, 발사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일종의 지하 도시와 다름없는 거대 기지를 구축하는 사업이 실제로 진행됐고, 건설 비용으로 당시 약 800만달러가 투입됐다. 오늘날 가치로는 1억달러(약 1400억원) 이상이다. 특히 소형 원자로를 이용해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핵분열 반응으로 전력을 생산해 난방을 비롯해 기지 운영에 사용했다. 도서관, 체육관, 식당, 우편실 등 각종 시설을 갖춘 빙하 기지에서 200여 명이 거주했다.
이 기지는 10년을 버티지 못했다. 해마다 눈이 쌓이면서 기지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고, 하중을 줄이기 위해 매월 120t에 달하는 눈과 얼음을 걷어내야 했다. 1962년에는 원자로가 설치된 공간의 천장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일부 내려앉았다. 여기에 더해 그린란드 빙하의 움직임도 예상보다 크자, 미군은 원자로를 계속 운영하기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1967년 기지를 폐쇄하고 떠났다. 이후 수십 년간 눈이 쌓이면서 방치된 기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온난화로 기지 노출 앞당겨지나
냉전 시대 버려진 빙하 속 군사기지가 파국을 낳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앞서 캐나다 요크대 연구진은 지구온난화로 캠프 센추리의 오염 물질이 새어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묻혀 있는 경유와 24만L(리터)에 이르는 오염수가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방사성 폐기물도 노출될 것으로 우려했다. 연구진은 캠프 센추리의 오염 면적이 축구장 77개 크기인 55만㎡에 달한다고 했다. 2090년부터는 쌓이는 눈보다 녹는 양이 더 많아지면서 빙하가 급격히 녹아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미 버몬트대 연구진은 캠프 센추리의 약 1㎞ 깊이에서 확보한 빙핵(氷核)을 분석해 이곳이 40만년 전에는 빙하가 대거 녹아내린 시기(간빙기)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기지 폐쇄 이후 수십 년간 방치됐던 빙핵을 뒤늦게 발견해 분석한 성과다.
이 연구는 지금의 그린란드도 40만년 전처럼 빙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버려진 캠프 센추리가 언젠가는 드러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시기가 70년 후가 될지, 앞당겨질지는 인류의 향후 온난화 방지 노력에 달린 셈이다.
지난 10일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섭씨 1.55도 상승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2015년 파리협정의 상승 제한폭 ‘1.5도’를 처음으로 넘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