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위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를 발간하는 스프링거 네이처 출판사가 지난해 6월 발표한 ‘2024 네이처 인덱스’는 세계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네이처 인덱스는 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측정하는 세계적 공신력을 갖춘 지표인데, 국가별 종합 순위에서 중국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이다. 과학 논문 성과가 향후 상용화할 과학기술의 선행 지표로 통한다는 점에서 세계가 중국을 주목했다. 지난달 중국은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로 글로벌 산업계에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지난 5일 본지와 만난 네이처 인덱스의 사이먼 베이커 편집장은 “중국은 인재 양성을 통해 R&D(연구·개발) 수준을 높여 결국 미국을 제쳤다”며 “딥시크는 중국의 대학에서 R&D 역량을 축적한 중국의 인재가 산업 분야에서 선보인 혁신 기술”이라고 했다. 베이커 편집장은 네이처 인덱스 산출 작업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카이스트(KAIST)와 공동 개최한 과학기술 정책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의 ‘과학 굴기(우뚝 일어섬)’를 어떻게 평가하나.
“예전에는 많은 논문을 내는 데 몰두했던 중국이 약 10년 전부터 네이처 등 최상위 학술지에 투고하며 논문의 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과학 연구 수준은 급격히 뛰어올랐다. 네이처 인덱스 순위로 입증된 중국의 인재 양성은 매우 발전된 ‘신흥 시스템(emerging system)’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신흥 시스템이란 어떤 것인가.
“1970년대 후반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연구 교류를 시작한 이후 20여 년간 중국은 많은 연구자를 미국에 보내 지식 역량을 쌓게 했다. 중국은 2000년대에는 대학을 성장시키기 위해 투자를 대폭 늘렸다. 이후에는 해외에서 최고 수준이 된 연구자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중국의 인재 양성 체계가 실질적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해외에서 돌아온 석학들이 전문 지식을 대학에 전수하도록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인재 양성 체계가 갖춰졌고 연구 수준은 급격히 높아졌다.”
네이처가 과학 분야 대학 순위를 처음으로 발표한 ‘2016 네이처 인덱스(2015년 연구 성과 평가)’에서 당시만 해도 상위 10위 안에 든 중국 대학은 베이징대(9위) 한 곳뿐이었다. 1~3위를 휩쓴 미국이 5곳, 유럽은 3곳을 톱 10 대학에 올렸다. 이러한 판도를 중국이 8년 사이에 뒤엎었다. ‘2024 네이처 인덱스’에서 중국과학원대학(2위)을 비롯해 무려 8개 중국 대학이 톱 10을 휩쓸었다. 10위 안에 든 미국 대학은 2곳(하버드·MIT)만 남았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은 중국 순수 국내파다. 어떤 의미가 있나.
“딥시크는 중국의 과학 연구 투자가 기술의 혁신으로 성숙했다는 걸 입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기초과학 연구 투자를 혁신 기술로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변화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한다. 딥시크도 일종의 대학 연구를 기반으로 한 기업이다. 특정 분야 전문가가 혁신 기술을 만들고 회사를 설립하는, 성숙한 산학 협력 시스템이 시작된 것일 수 있다. 다만 단정하기에는 지금은 너무 이르고 5년은 지켜봐야 한다.”
네이처 인덱스는 중국 과학 경쟁력의 요인 가운데 하나로 이공계 여성 비율이 높다는 점을 꼽는다. 이날 본지 인터뷰에 함께한 네이처 인덱스의 베크 크루 선임 에디터는 “중국은 여성 연구자 비율이 40%에 가까운데 이는 세계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라며 “여성 인력이 이공계를 선택하도록 정부가 적극 독려하고, 출산과 육아 후에도 복직할 수 있도록 전향적인 정책을 시행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고 했다. 네이처 측은 중국 대학 연구의 ‘기업식 업무 방식’도 고속 성장 배경으로 분석한다. 성과 압박이 강해 매우 오랜 시간 근무하는 중국 산업계의 풍토가 학계에도 여전해, 수많은 학생이 엄청난 시간을 연구에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과학 발전을 언급할 때 흔히 거론되는 ‘천인 계획(2008~2018년 중국 정부가 주도한 해외 인재 유치 사업)’이 효과가 있었다고 보는가.
“구체적인 증거 없이 효과를 언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기간에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이제 정말 수준 높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보다 인구가 더 많다. 앞으로 중국의 1인당 연구 성과가 미국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미국을 앞서게 될 것이다.”
-중국의 한계는 무엇인가.
“세계지식재산기구가 집계하는 혁신 순위에서 중국은 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상황인지 등 지표에서 10위 밖의 평가를 받는다. 이는 중국이 글로벌 혁신 부문에서 앞으로 발전할 여지가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네이처 측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과 연구 협력을 바탕으로 과학 경쟁력을 끌어올린 중국이 최근 미·중 갈등 여파로 국제 협력이 주춤하는 점을 변수로 지적한다. 국제 연구 네트워크가 향후 중국 과학의 지속적인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이처 인덱스는 지난해 한국 특집호를 발간했다. 한국 과학기술이 투자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 원인으로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투자 환경과 외국인·여성 연구자 부족을 들었다.
-한국의 연구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거대한 나라인 중국,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인구 규모를 감안할 때 한국(8위)이 네이처 인덱스에서 10위 안에 든다는 것은 한국의 연구 생태계가 우수하다는 증거다.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R&D 투자 비율은 5.21%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R&D 투자의 4분의 3은 기업이 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기업은 연구 논문을 많이 발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논문 성과를 집계하는 네이처 인덱스에는 R&D 투자 성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다. 다만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이 둔화되고 있다는 우려는 있다. 우리가 특집호에서 지적한 요인은 한국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제안한 것이다.”
네이처 인덱스 한국 특집호의 전문가 패널로 참여한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과학기술 분야 투자에서 미국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 6년 전이었고, 작년에 네이처 인덱스 종합 1위에 올랐다”며 “R&D 투자 이후 성과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네이처 인덱스
’네이처’를 출판하는 스프링거 네이처가 과학 논문 수와 연구 기여도 등을 바탕으로 국가별·기관별 순위를 매긴 지표. ‘2024 네이처 인덱스’의 경우 자연과학 분야 최상위급 학술지 145종에 실린 논문 7만5707편을 분석해 연구 생산성 등을 평가했다. 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측정하는 세계적 공신력을 갖춘 지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