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윤 한미약품 사내이사가 지난해 9월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사옥에서 이사회가 끝난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연합뉴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창업자의 장남인 임종윤 코리(COREE)그룹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신약개발 회사인 디엑스앤브이엑스(DXVX)가 14일 하한가를 기록하며 거래를 마쳤다. 전날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이 발생했다는 공시를 한 여파다.

DXVX는 과거에도 실적 부진과 적자 지속으로 위기에 빠졌다가 임종윤 회장이 구원 투수로 등장해 거래가 재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임 회장 자신도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와중에 한미사이언스 이사직에서 물러나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임종윤 회장의 DXVX 살리기 대작전

DXVX는 임종윤 회장의 사실상 개인 회사다. 한미약품그룹 내 중국통인 임 회장은 2009년 홍콩에 코리컴퍼니를 설립했고, 상장폐지됐던 DXVX(옛 캔서롭)를 인수했다. 임 회장은 2021년 한미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현물 출자해 DXVX 지분 19.57%를 확보했다. 이후 임 회장은 경영진 교체, 사업구조 다각화 등을 단행하며 외형 성장에 나섰다.

하지만 DXVX 실적은 매년 악화일로다. 2021년 78억원 수준이던 당기순손실은 2023년 278억원으로 늘었고, 회사가 13일 공시한 지난해 연결 기준 잠정 실적에서는 499억원으로 급증했다. 2023년에 이어 작년에도 법인세비용 차감 전 계속사업손실률이 50%를 초과할 것으로 보이자 회사가 먼저 공시를 통해 관리종목 지정 우려를 알린 것이다.

상황이 계속 좋지 않자 경영권 분쟁 중이던 작년 9월에는 임 회장의 다른 개인회사인 코리컴퍼니를 통해 DXVX에 자금 수혈을 하기도 했다. DXVX가 진행한 424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코리컴퍼니가 참여했고, DXVX는 채무상환과 연구개발, 인건비 등에 자금을 쓰겠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거액의 상속세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못해 지분율이 낮아졌지만, 코리컴퍼니가 참여한 덕분에 DXVX에 대한 지배력은 유지했다.

DXVX는 실적 악화가 신약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제약업계에서는 회사 규모에 비해 광범위한 사업 확장, 비용 관리 실패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DXVX의 의료진단 사업부문의 부진도 배경으로 꼽힌다. 이 사업부의 주력사업은 생애 유전체 데이터 기반의 산전·산후 신생아 검사를 비롯한 유전자분석 진단 사업인데, 2022년 120억원의 매출로 전체 37%를 차지했지만 수출이 크게 줄면서 2023년 급감했다.

회사의 최대 주력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군)인 비만 분야는 아직 성과가 나려면 멀었다. DXVX는 기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기반 비만 치료제와의 차별화를 위해 경구용으로 약물을 개발하고 있지만, 전임상 시험 단계다. 지난 2023년에는 안과 질환 신약개발 전문기업 에빅스젠을 인수했고, 작년 말에는 옥스포트 백메딕스(OVM)로부터 항암백신 ‘OVM-200′을 도입했지만 임상 1b상을 앞둔 단계다. 한양대와 정부과제로 진행 중인 mRNA 기반 항암백신은 아직 전임상 단계다.

이에 대해 DXVX 관계자는 글로벌 기술이전 계약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포항공대로부터 도입한 상온 초장기 비축이 가능한 mRNA 백신 소재와 산모·태아를 위한 유전체 검사 서비스에 사용되는 시약에 대한 기술이전을 추진 중이다. 현재 글로벌 제약사들과 기술수출을 위한 기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하고, 기술 분야 실사도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DXVX 관계자는 “현재 기술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은 개발이 오래 걸리는 신약 파이프라인과 달리 당장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이라며 “올해 좋은 사업 성과를 내 주주분들께 끼친 심려를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북경한미 챙기는 임종윤…DXVX 운명도 달려 있어

DXVX의 운명은 사실상 임종윤 회장의 지원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게 제약업계와 투자업계의 전망이다. 문제는 임 회장의 여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임 회장은 지난해 거액의 상속세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이 임 회장에게 빌려준 266억원을 갚으라며 작년 3월 대여금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도 타격이 됐다.

관건은 임 회장이 북경한미를 이용해 DXVX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지 여부다. 북경한미는 한미약품이 중국 국영기업인 화륜자죽약업과 함께 설립한 회사다. 중국통인 임 회장의 입김이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경영권 분쟁 와중에 임 회장의 스피커 역할을 해왔던 로코모티브는 이날 임 회장이 북경한미의 동사장(이사회 의장·대표)에 선임됐다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로코모티브는 북경한미가 권용남 경영지원부 총감과 서영은 연구개발센터 책임자, 이선로 코리 이태리 대표 3명을 신규 동사(이사)로 임명하고 등기를 마쳤다고 밝혔다.

그러자 한미약품이 곧바로 해명 자료를 내고 임 회장의 북경한미 동사장 선임에 대해 지나친 의미부여를 삼갔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한미약품이 북경한미약품의 지분 73.7%를 갖고 있다”며 “추후 정리해 공식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다. 임 회장이 북경한미의 동사장에 오르더라도 임 회장의 뜻대로 북경한미를 운영하기 힘들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제약업계에서는 임 회장이 북경한미를 장악하면 DXVX에 대한 추가 지원도 가능하다고 본다. 북경한미의 유통사 중 하나인 오브맘홍콩이라는 회사가 코리컴퍼니의 계열사인데, 오브맘홍콩은 작년 3월 DXVX의 전환사채(CB) 발행에 참여해 자금 지원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