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뿐 아니라 바이오 분야에서도 ‘딥시크 모먼트(DeepSeek Moment)’가 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AI 기업 딥시크가 저비용·고성능 AI 모델로 글로벌 테크 산업에 충격을 던졌듯,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미국의 경쟁사 대비 더 빠르고 싸게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이런 평가가 나온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9월 미국 바이오 기업 서밋 세러퓨틱스의 항암제 ‘이보네시맙’ 임상 3상 공개였다. 이보네시맙은 임상 3상에서 세계 1위 면역 항암제인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 대비 종양 진행 위험을 49%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약은 서밋 세러퓨틱스가 중국의 바이오 기업 ‘아케소’에서 사들인 신약 물질로 개발한 것이다. 중국의 무명 바이오 기업이 만든 신약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을 효과 면에서 뛰어넘은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제약 산업도 ‘딥시크 모먼트’를 겪고 있다”며 “10년 뒤에는 미국 시장에 출시되는 많은 의약품이 중국 연구소에서 개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제약·바이오 전문 시장조사 기업 딜포마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체결한 선급금 5000만달러(약 720억원) 이상의 대규모 기술 거래 중 29%가 중국 바이오 기업과 맺은 것이었다. 이 비율은 2020년 4%에서 4년 만에 25%포인트 급등했다.

중국 바이오 산업의 발전 공식은 AI와 흡사하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최고의 과학자들이 중국으로 돌아와 상하이를 중심으로 바이오 허브를 구축했다. 중국 바이오 기업들은 고도로 숙련된 저비용 인력을 활용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미국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할 수 있고, 임상을 위한 규제가 최근 간소화된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AI를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 적극 도입하면서 신약 개발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정부가 중국 바이오 산업 규제를 시작하면서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직접 미국 시장에 신약을 출시하는 게 어렵다”며 “AI를 이용해 저렴한 값에 좋은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이를 글로벌 제약사에 판매하는 전략을 중국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