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진영·Midjourney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와 중국 다롄이공대 연구팀은 게임이나 가상 현실(VR)의 미각을 이용자가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기기 ‘이테이스트(e-Taste)’를 개발했다. 여러 전자 센서로 이뤄진 ‘전자 혀’가 음식이나 음료의 맛을 화학적으로 분석해 이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다. 이 신호를 입에 달린 자그마한 펌프에 전달하면, 단맛·신맛·짠맛·쓴맛·감칠맛 등 5가지 맛을 내는 액체를 입안에 흘려 넣어 실제로 맛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를 통해 “이테이스트가 음식의 맛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게 해줄 뿐 아니라 온라인 쇼핑 중 시식이나 신체 재활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람의 감각기관인 혀를 모방해 맛을 감지하는 ‘전자 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전자 혀는 음식을 인간의 혀가 느끼는 5가지 기본 맛으로 분석해 맛을 정량적으로 나타내는 기기를 뜻한다. 지난 2000년 기요시 도코 일본 규슈대 교수가 개발해 상용화의 첫발을 디뎠다. 다만 당시에는 센서의 정확도가 낮았고 크기가 커서 효율성이 낮았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데이터 분석 능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복잡한 화학 성분을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이와 더불어 전력도 스스로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됐다. 전자 혀가 음식의 맛 평가뿐 아니라 신메뉴 개발 등 식품 산업에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음식 맛 재현하는 전자 혀

인간은 혀의 미각세포를 통해 맛을 느낀다. 미각세포가 음식의 성분을 화학적으로 감지하고, 뇌로 전달해 다양한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전자 혀의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전자 센서가 짠맛, 단맛 등을 내는 화학 이온을 감지하고, 이를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는 것이다.

그래픽=이진영

최근에는 전자 혀의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95% 이상의 정확도로 음식을 구별할 수 있는 전자 혀 기술을 공개했다. AI에 맛을 학습시켰더니 우유와 탄산수, 커피, 과일 주스 등 음료 시료를 1분 만에 80% 정확도로 구별했고, 추가적인 학습을 통해 정확도가 95% 이상까지 향상됐다. 2가지 이상 커피를 섞은 블렌드나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의 차이도 구별했다. 이 센서는 그래핀으로 만들어졌고, 하나의 센서만으로 5가지 맛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다.

전자 혀의 맛 분석을 활용해 실제 맛을 구현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짠맛에는 염화나트륨, 신맛에는 구연산, 단맛에는 포도당, 쓴맛에는 염화마그네슘, 감칠맛(우마미)에는 글루탐산 등 5가지 기본 맛에 해당하는 화학 물질을 사용해 맛을 재현했다. 이를 통해 레모네이드, 케이크, 달걀프라이, 생선수프, 커피 등 5가지 음식을 액체로 구현했다. 이후 실험 참가자 6명에게 각 음식을 구별하도록 했더니, 87%의 정확도로 알아맞혔다.

홍콩대 연구팀은 VR 환경의 미각을 느낄 수 있는 막대 사탕 모양의 기기를 개발해 미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했다. 8㎝ 정도로 사탕과 비슷한 크기인 이 기기는 설탕, 소금, 구연산, 체리 등 9가지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기 안의 화학 물질이 기기 표면으로 전달돼 실제 막대 사탕처럼 맛을 내게 된다. 전압에 따라 맛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다. 연구팀은 “VR 기기에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경험은 발전하고 있지만, 미각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라며 “VR 게임의 몰입감을 높이는 것 외에도 온라인 식료품 쇼핑, 교육 등 실용적인 용도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식품 산업에 적극 활용

그래픽=이진영

전자 혀는 이미 식품 산업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롯데중앙연구소는 전자 혀를 통해 주류나 음료 시제품의 맛을 초정밀 계량화하고 있다. 세계 1위 식품 기업인 네슬레는 치킨 양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최적의 원료 양을 전자 혀를 통해 실험한다. 프랑스 기업 알파 모스는 전자 혀 기기를 음료, 커피 제조사에 공급해 맛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IBM은 액체의 성분을 분석하는 기기 ‘하이퍼 테이스트’를 통해 양념 제조사 맥코믹과 공동으로 조미료를 개발했다. 덴마크 맥주 업체 칼스버그는 맥주의 효모와 발효 성분만 알려주면 맥주 맛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시장조사 업체 퓨처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전자 혀 시장 규모는 2025년 4억9790만달러(약 7180억원)에서 2035년 7억742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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