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다이서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경세포를 직접 제어할 수 있게 하는 광유전학 기술은 뉴럴링크보다 더 강력한 신경질환 치료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아산사회복지재단

생쥐 뇌에 연결한 광섬유가 빛을 내자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신경세포가 빛에 반응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54)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2005년 빛으로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광유전학(光遺傳學, optogenetics) 기술을 개발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지난 18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광유전학을 이용해 뇌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신경세포를 직접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만큼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보다도 더 강력한 치료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생쥐의 뇌에 광섬유를 이식해 광유전학 실험을 하는 모습. 광유전학은 빛을 이용해 신경세포(뉴런)을 제어하는 기술이다./셀

그는 이번에 광유전학을 통해 인간의 인지, 행동 능력에 대한 세포의 역할을 이해하고 뇌와 행동 간의 연결성을 찾은 공로를 인정받아 제18회 아산의학상을 수상했다. 상금 25만달러(약 3억6000만원)도 받았다.

칼 다이서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개발한 조직 투명화 기술. 다이서로스 교수는 광유전학을 개척한 인물이지만, 새로운 연구 분야에 항상 도전하고 있다./스탠퍼드대

다이서로스 교수는 바다에 사는 녹조류에서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인 옵신에서 광유전학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동물의 신경세포에 이식했다. 유전자 전달은 생체에 해가 없는 바이러스가 했다. 동물세포에 들어간 유전자가 합성한 옵신은 빛에 반응해 신경의 세포막을 열고 닫았다.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것이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마찬가지로 빛으로 신경세포를 제어한다면 난치성 신경질환도 정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광유전학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업인 뉴럴링크와 비교했다. 이 회사는 뇌에 전극을 연결해 신경신호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환자의 생각을 읽고 그에 맞춰 컴퓨터나 로봇을 작동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뉴럴링크가 신경 신호를 읽거나 관찰할 수 있으나, 이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반면 광유전학은 신경세포를 직접 조작해 근본적으로 기능을 바꿀 수 있어 신경질환과 정신질환의 치료라는 목표에 가장 적합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시각장애인의 시력을 회복한 임상시험을 소개했다. 미국과 스위스, 영국 연구진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2021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에 색소성 망막염 환자를 광유전학 기술로 치료했다고 발표했다. 색소성 망막염은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광수용체가 손상돼 시력이 저하되는 신경질환이다.

당시 실험에 참여한 한 환자는 이미 40년 전 색소성 망막염 진단을 받고 앞을 전혀 볼 수 없었으나, 광유전학으로 만든 인공망막을 이식받아 눈앞의 물체를 인식하거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색소성망막염처럼 이미 원인을 알고 있는 질병에 대해서는 광유전학이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앞으로 뇌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광유전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유전학을 이용한 신약 개발도 시도되고 있다. 빛을 비춰가며 신경세포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고 약물의 효과를 알아보는 방식이다. 다이서로스 교수도 생명공학 기업 맵라이트 테라퓨틱스를 창업하고 신약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맵라이트 테라퓨틱스는 최근 광유전학 플랫폼(기반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신약의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예로 들었다. 지금은 진정 효과가 너무 강력하고 부작용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정확한 신경세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차별 폭격을 한 셈이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광유전학을 이용해 특정 신경세포에만 작용하는 약물을 개발한다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 증상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맞춤형 표적 치료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광유전학을 이용해 신경세포뿐 아니라 심장 근육을 제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그는 “광유전학이 다양한 질환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뇌를 연구하는 새로운 기술들을 잇따라 개발했다. 그는 2013년 정광훈 박사(현 매사추세츠공대 교수)와 함께 ‘조직 투명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있다. 뇌가 불투명한 것은 세포막을 이루는 지방이 빛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지방을 없애고 그 자리에 묵과 같은 물질인 하이드로겔을 넣어 신경세포를 이루는 단백질과 DNA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생체 조직을 투명하게 만들어 절단하지 않고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로, 그의 연구 이후 수많은 파생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

광유전학 연구로 노벨상 수상자에 거론될 정도로 명성을 쌓은 그가 새로운 연구에 계속 도전하는 이유를 묻자 “과학자라면 안전한 연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위험하고 도전적인 연구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조언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이서로스 교수 “공학자나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연구 시간의 4분의 1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할애하라는 조언을 해준다”며 “단지 남들과 다르게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며, 이는 모든 과학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