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올해 1분기 대규모 기술 수출 계약을 잇따라 체결해 업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기술 수출은 우수한 신약 후보 물질 또는 개발 기술에 관한 권리를 해외 빅파마(대형 제약사) 등에 이전하고 계약금과 기술료를 수령하는 것을 말한다. 임상을 비롯해 출시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할 경우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신약 개발에 비해 기술 수출의 장점은 실패 위험 부담이 작아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규뿐 아니라 기존에 해외로 기술 수출한 신약들의 주요 임상 3상도 이달 잇따라 공개될 예정이다. 업계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기술력이 입증된 것”이라며 “기술 수출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한다.

◇1분기 ‘K바이오’ 기술 수출, 3조원 육박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알테오젠은 17일 영국계 다국적 기업 아스트라제네카의 R&D 자회사 ‘메드이뮨’과 최대 2조원에 달하는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알테오젠은 정맥에 주입하는 방식의 치료제를 피부 아래 지방층으로 주입하는 피하(皮下) 주사로 바꿀 수 있는 기술(ALT-B4)을 보유하고 있다. 병원에서 4~5시간 맞아야 하는 정맥 주사(Intravenous Injection·IV)와 달리 피하(Subcutaneous·SC) 치료제는 가정에서 환자가 스스로 주사할 수 있어 편의성이 높다. 또 IV를 SC로 의약품 제형(劑型)을 바꾸면 특허를 늘릴 수 있어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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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오젠은 메드이뮨의 미국·영국 법인과 총 13억5000만달러(약 1조95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IV 제형 항암제 3종을 SC 제형으로 개발하는 계약이다. 계약금이 660억원 이상이고, 향후 임상 시험과 품목 허가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기술료를 받는다. 해당 약품들이 상업화에 성공하면 로열티도 수령한다.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는 “세계적인 혁신 치료제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항암제에 우리 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한 발전”이라며 “많은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사 올릭스가 세계 시총 1위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6억3000만달러(약 9100억원) 규모의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대사 이상 지방간염(MASH)과 심혈관·대사 질환 치료제 신약 후보 물질 ‘OLX702A’의 권리를 기술 수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올릭스가 OLX702A의 임상 1상을 마치면, 일라이릴리가 개발 및 사업화를 넘겨받아 진행하기로 했다. 장내 미생물 신약을 개발하는 지놈앤컴퍼니도 지난달 영국의 엘립시스 파마와 면역 항암제 ‘GENA-104’에 대한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픽=김현국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 수출 액수는 2022년 48억1313만달러에서 2023년 59억4600만달러로 급증했다가, 지난해 55억4600만달러로 주춤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세계적 경기 불황과 정치적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기술 수출 건수가 줄어들었지만, 올해는 연초부터 1조원 안팎의 계약이 연달아 터졌다”며 “올해 빅파마의 투자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 수출 계약 건수와 액수가 모두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수출 기술 적용된 임상 결과, 이달 발표

국내 기업의 기술이 사용된 의약품의 주요 임상 3상 결과도 이달 연달아 공개된다. 지난해 미국 머크의 항암제 ‘키트루다’에 알테오젠의 SC 제형 기술이 적용된 키트루다SC의 임상 3상 결과가 이달 유럽폐암학회(ELCC)에서 공개된다. 키트루다는 지난해 매출 294억8200만달러를 기록한 세계 매출 1위 약이다. 앞서 머크는 키트루다SC가 IV 제형과 동등한 효능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유한양행이 존슨앤드존슨(J&J) 자회사 이노베이티브메디슨에 기술 수출한 폐암 치료제 ‘렉라자’와 J&J 리브리반트 병용 요법의 상세 임상 3상 결과도 이달 ELCC에서 발표된다. 경쟁 약품인 타그리소보다 전체 생존 기간(OS)이 1년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올바이오파마가 미국 이뮤노반트에 기술 수출한 중증 근무력증 신약 ‘바토클리맙’ 임상 3상 결과도 이달 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