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의사가 스마트폰 영상 통화를 활용해 당뇨병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의사는 모니터에 혈당 수치 변화 그래프 등 환자 정보를 띄워놓고 먼 거리에서도 비대면(非對面)으로 진료가 가능하다./조선DB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개요./원격의료산업협의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면서 임시 허용됐던 비대면진료가 5년 동안 1400만명 이상에게 활용됐지만, 여전히 ‘제도화’의 문턱은 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대부분 비대면진료 법제화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키우는 사이, 한국은 여전히 ‘시범사업’이라는 불안정한 틀에 가둬 의료현장의 혼란과 이용자 불편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정서희

비대면진료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음성 전화나 영상 통화로 진찰·처방을 받는 의료 행위를 말한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워지고 감염 환자가 폭증하자 2020년 2월 비대면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약 배송도 허용했다.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줬지만 의료 상황에 따라 적용 대상 축소와 확대를 오가면서 여전히 법적 기반 없이 시범사업에 머물고 있다.

◇OECD 32국 중 한국만 법제도 없어

코로나19 대유행 3년간 한시 허용되는 동안 비대면진료는 총 3600만 건이 이뤄졌다. 2023년 6월, 코로나 위기 경보 단계가 하향 조정되면서 비대면진료는 한시 허용에서 시범사업 형태로 전환됐다. 초기에는 6개월 이내 다녔던 병원만 비대면진료가 가능했고, 약 배송도 금지됐다.

이용 조건이 까다로워 이용자들의 불만이 잇따랐다. 내원 병원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해당 병원이 비대면진료에 참여하지 않으면 진료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24년 초 전공의 1만여명의 이탈로 의료공백이 커지자, 정부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같은 해 6월부터는 진료 대상에 관계없이 비대면진료를 전면 허용했다.

다만 여전히 법 기반 없는 시범사업 형태이고, 약 배송도 일부 취약계층에 한해 제한적으로만 허용했다. 반면 한국처럼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미국과 영국·독일·프랑스·스위스·일본·캐나다 등 국가는 모두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을 법제화했다. OECD 국가 가운데 비대면진료를 법제화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OECD 주요국은 이미 비대면진료 제도화로 의료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을 높여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시범사업이라는 틀 안에 머물고 있다”며 “이제는 (법제화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해외선 AI까지 접목, 산업 육성 서둘러야

비대면진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면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 6건은 모두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다. 그 사이 관련 산업은 싹을 틔우지도 못했다.

비대면진료 중개 플랫폼 단체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이슬 공동회장(닥터나우 대외정책이사)은 “해외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접목해 비대면진료의 정밀도를 높이고 있지만, 국내는 여전히 시범사업에 갇혀 있다”며 “비대면진료가 불가한 상황만 제외하고 폭넓게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산업 경쟁력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법제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임성관 산업통상자원부 바이오융합산업과 사무관은 이날 토론회에서 “해외에서는 가정에서의 디지털 헬스케어가 경쟁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제도가 안착된다면 가정용 의료기기, 홈케어 서비스 분야, AI 데이터 분석 사업 등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창현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도 “비대면진료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제 거의 없다”고 했다. 성 과장은 “문제는 ‘어떻게’ ‘얼마나’ 안전하게 제도화할 것인가이다”며 “정보보호와 진료 안전성 확보가 핵심 과제”라고 했다.

22대 국회에서도 비대면진료의 법제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최보윤 의원을 시작으로 이달 18일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같은 당 우재준 의원까지 잇달아 비대면진료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 의원은 “현재 국내 비대면진료는 감염병 위기 때만 한시 허용하고, 제도화 논의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비대면진료는 특히 장애인과 고령층, 격오지 주민 등 의료취약 계층에게는 실질적인 의료서비스의 대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