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연구, 보건 및 고등 교육에 대한 자금 삭감에 반대하는 '킬 더 컷' 시위가 열렸다./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과학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 대폭 축소되자 과학자들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미국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2일(현지 시각) “미국의 과학 분야 예산과 인력 축소가 본격화되자 2025년 1분기 동안 미국 과학자들의 해외 구직 활동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증가했다”고 밝혔다.

네이처 커리어스(Nature Careers) 플랫폼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1분기에 미국에서 해외 일자리를 열람한 과학자들이 35% 증가했다. 특히 3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조회 수가 무려 68% 급증했다. 이때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과학 연구비를 삭감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 연구를 위한 미 연방 보조금 200건 이상이 예고 없이 종료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연구도 예산 삭감의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컬럼비아대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이유로 연방정부로부터 연구비 4억달러(약 5700억원)를 삭감당했다. 샤오 우 컬럼비아대 교수는 X(옛 트위터)에 “처음 지원받은 국립보건원(NIH) 연구비가 지급된 지 단 3개월 만에 갑자기 취소됐다”며 “사실상 미국 교육 기관에서 쫓겨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마이클 프리들랜더 버지니아 공과대 생의학연구소장은 네이처에 “학생들과 박사후 연구원들이 과학자의 길을 계속 가야 할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박사후 연구원 협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43%가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고 답했고, 35%는 연구 자체가 지연되거나 중단됐다고 밝혔다.

이미 미국을 떠난 과학자들도 있다. 발레리 니만 스위스 베른대 연구원은 스탠퍼드대에서 연구하다가 올해 스위스로 자리를 옮겼다. 니만 연구원은 “미국에서는 박사후 연구원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며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신청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떠나는 과학 인재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프랑스의 엑스마르세유대는 기후와 보건, 환경, 사회과학 분야의 미국 연구자 15명을 초청하기 위해 1700만 달러(약 242억원) 규모의 ‘과학을 위한 안전한 공간’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패트릭 크레이머 독일 막스 플랑크 협회 회장은 미국 기관들과의 협력 연구 센터를 설립하고, 산하 연구소 84곳에 박사후 연구원 연수 과정과 신진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 발표했다.

네이처 커리어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3월 유럽 지역 채용 공고에 대한 미국 지원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고, 조회 수도 41% 증가했다. 동시에 유럽 연구자들이 미국 기관에 지원하는 건수는 41% 감소했다.

중국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창업과 경력 개발의 기회를 내세우며 미국 과학자들을 겨냥한 채용 광고를 활발히 내고 있다. 네이처에 따르면 올 1분기 동안 미국인이 중국의 채용공고를 열람한 횟수는 30%, 지원자 수는 20% 증가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대한 관심도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5-012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