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공공의대’를 의료 공약으로 발표했다. 공공의대에 입학하면 국가로부터 학비 지원을 받는 대신 졸업하고 일정 기간 공공 의료기관에서 의무 근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국민 누구나 아플 때 걱정 없이 치료받게 한다는 구상이다. 의료계는 일본의 성공 사례가 있는 제도지만 의사들이 지역에서 근무할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공공의대로 필수·지역 의료 인력 양성”
이 후보는 “공공의대를 설립해 공공·필수·지역 의료 인력을 양성하고 공공병원을 확충하겠다”는 내용의 ‘의료 정책 발표문’을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수준 높은 의료 체계를 구축했지만 여전히 거주 지역에 따라 의료 격차가 존재한다”면서 “지역 의료 격차를 줄이고 응급·분만·외상 치료 같은 필수 의료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공공의대 의대생들은 국가 지원을 받아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따면 보건소나 군병원처럼 공공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환자를 돌봐야 한다. 근무 기간은 10년 안팎이 거론된다.
이 후보는 공공의대 정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현재로선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 인력 수급 추계위원회(추계위)에서 2027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논의하면서 공공 의료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추계하고, 이를 공공의대에 배분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후보가 공공의대 정책을 꺼낸 건 근본적으로 국민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은 정부가 지역·필수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하면서 불거졌다. 하지만 의사 수가 늘어도 수도권이나 피부·미용 같은 인기 과로 쏠리면 소용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후보 측은 공공의대를 만들면 지역·필수 의료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의사 수를 늘리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이나 필수 의료 분야로 가길 기다리기보다 처음부터 해당 분야에서 일할 의사를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10년 전부터 논의…의료계 반발에 무산
공공의대는 정치권에서 10년 전부터 논의됐다.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5년 19대 국회에서 공공의대법을 발의했지만 국회 임기가 만료돼 폐기됐다. 당시 법은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대생들이 10년간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2020년 각각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전북 남원 서남대 의대가 문을 닫자 정원 49명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만들려고 했지만 의료계가 반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진 2020년에도 공공의대를 만들고 10년 동안 의사 수를 4000명 늘리려고 했지만, 역시 의사들이 대규모로 파업하며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7월에도 공공의대를 나온 의사들이 필수 의료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공공의대법을 발의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같은 시민단체들은 공공의대 설립을 환영한다. 반면 의료계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공공 의료를 강화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현되기는 쉽지 않은 제도란 것이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의협) 대변인은 “공공의대 하나를 만들려면 교수도 늘려야 하고 실습할 병원도 필요한데 지금은 의대 교수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공공의대를 설립하면) 10년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日 자치의대, 졸업 후 9년 고향서 근무
공공의대의 모델은 일본이 1970년대에 만든 자치의대이다. 일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에서 각각 매년 2~3명씩 총 120명을 선발하고, 졸업 후 자신의 고향이나 농어촌에서 9년간 의무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이들은 의무 근무 동안 공무원 신분을 갖는다.
자치의대에 입학하면 졸업할 때까지 국가가 학비를 지원한다. 졸업하면 각 자치단체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돌봐야 한다. 의무 근무 기간에 이탈하면 자치의대 학비를 바로 갚아야 한다.
의대 학장들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2023년 발표한 ‘의사 인력 정책의 쟁점과 대안’ 보고서에 따르면, 자치의대 1~30기 졸업생 2958명중 99%인 2914명이 의무 근무를 마쳤다. 의무 근무를 마친 의사 가운데 67%(1947명)는 해당 지역에 계속 남았다. 이를 근거로 자치의대가 지역 의료를 강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일본 자치의대의 성공 사례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의사들이 지역에서 근무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본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일본 자치의대를 졸업하고 지역에서 근무해도, 그나마 (도심과 가깝거나 번화가인) 현청 근처에서 일하려는 분위기”라면서 “먼저 의사들이 어떻게 하면 지역에 머무를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