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마리가 노틸러스호를 덮쳤다… 마치 히드라의 수많은 머리처럼 끈끈한 촉수가 다시 자라나는 것 같았다. 작살이 오징어의 바다색 눈에 꽂힐 때마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의 한 장면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상상 속 오징어를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이 1870년 출간됐을 당시에는 실존 여부를 알 수 없었던 ‘거대 오징어(colossal squid)’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최초로 포착됐다. 앞서 1925년 남극에서 포획된 향유고래의 위에서 거대 오징어가 팔만 남은 상태로 발견된 지 100년 만이다.

/슈미트 해양연구소

미국 슈미트 해양연구소는 남대서양 수심 600m에서 거대 오징어<사진>를 최초로 촬영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 오징어는 30㎝ 길이의 어린 개체다. 다 자란 거대 오징어는 길이 6~7m, 무게는 50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 오징어 성체(成體)는 수심 1000m 이상 심해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대 오징어 눈의 지름은 30㎝로 농구공만 하다. 커다란 눈으로 빛의 흔들림과 주변 수압의 작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심해 탐사 장비의 인공 조명이나 진동을 멀리서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파파라치’를 따돌리듯 거대 오징어가 자신의 살아 있는 모습을 100년 동안이나 들키지 않은 배경이다.

이번에 원격 조종 잠수정에 찍힌 거대 오징어는 투명한 피부와 가느다란 팔을 가지고 있다. 성체가 되면 몸이 점차 불투명하고 붉은빛을 띠게 된다. 슈미트 해양연구소는 “거대 오징어의 생애 주기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결국에는 어린 시절의 투명한 모습을 잃게 된다”며 “죽어가는 성체가 어부들에 의해 촬영된 적은 있지만, 수심에서 살아있는 거대 오징어의 모습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슈미트 해양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성과는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바다에 가득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