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약 개발의 첫 관문처럼 여겨져온 동물실험 규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FDA는 필수로 요구했던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줄기세포로 배양해 만든 ‘오가노이드’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오가노이드는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미니 장기로,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부분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
FDA가 동물실험의 대체 기술로 공식 인정한 오가노이드가 주목받고 있다. 기존 동물실험보다 예측력과 안전성이 높아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기술로 기대를 모은다.
◇신약 임상, 장기 이식에 활용
오가노이드 기술은 불과 20여 년 사이 빠르게 발전했다. 첫 오가노이드 개발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다. 2009년 네덜란드 후브레히트 연구소의 한스 클레버스는 생쥐의 직장(直腸)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배양해, 몇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내장을 만들어냈다. 실제 생쥐의 직장과 똑같은 세포가 3차원으로 자라난 ‘미니 내장’이다. 클레버스는 이것을 ‘오가노이드(organoids)’라고 이름을 붙였다. 장기를 뜻하는 ‘Organ’과 비슷하다는 뜻의 ‘-oid’를 합성해서 만든 단어다. 사람 장기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뜻이다.
첫 오가노이드는 동물 세포로 만들었지만 이젠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뇌·위·췌장·폐·간·갑상선 등 여러 장기와 유사한 구조와 기능을 지닌 오가노이드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각종 암 연구, 맞춤형 치료도 가능해졌다.
오가노이드를 통한 장기 이식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2023년 미국 신시내티 어린이병원은 간 오가노이드를 동물에 이식해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팀은 “환자들이 간 이식 수술을 받기까지 생명 연장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오가노이드를 통한 신약 임상시험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바이오 기업 시그넷테라퓨틱스는 올해 초 위암 치료제 후보물질 임상시험에 들어갔는데,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물질을 오가노이드를 통한 실험으로 찾아냈다고 밝혔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도 혈액암 치료제 개발에 오가노이드를 활용하고 있다. 골수 오가노이드를 활용하고, 이 결과를 인공지능(AI) 플랫폼으로 분석하면서 임상 1상 성공률이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스위스 로슈는 세계 제약사 중 가장 큰 규모의 오가노이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동물실험 완전 대체 가능할까
보통 신약 개발을 위해선 흰쥐를 비롯한 설치류와 영장류·조류·어류 등이 실험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 실험에 사용된 동물이 연간 499만 마리(2022년 기준)이고, 세계적으로는 연간 2억 마리 동물이 신약 실험에 쓰인다. 동물실험의 윤리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된 배경이다.
문제는 이 같은 동물실험으로 약의 효능을 정확하게 입증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독일 기업이 개발한 임산부 입덧 방지약 ‘탈리도마이드’가 대표적 사례다. 1960년대에 개발된 이 약품은 동물실험에서 별다른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출시 이후 투약한 임산부 상당수가 기형아를 출산했다.
오가노이드는 동물실험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 일반 오가노이드를 배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주 정도로 단축됐고, 비용도 50~100달러로 낮아졌다.
다만 오가노이드가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가노이드는 혈관, 면역세포, 미생물과 같은 구성 요소가 부족해 장기의 전체적인 기능과 인체 내 환경을 완벽히 재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여러 장기의 오가노이드를 연결해 장기 간의 대사나 신호 전달까지 모사하는 ‘멀티 오가노이드 시스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오가노이드(Organoid)
장기(臟器)를 뜻하는 단어 ‘Organ’과 ‘~와 비슷하다’는 뜻의 ‘-oid’를 합친 합성어. 주로 사람의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만든 ‘인공 미니 장기’를 일컫는다. 인간의 장기와 구조나 기능이 매우 비슷해 각종 질병 연구 및 약물 테스트, 개인 맞춤형 치료에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