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대학은 더 이상 교육과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다. 기술 이전과 사업화, 스타트업 투자와 육성도 열심이다. 서울대학교가 대표적이다. 서울대는 2008년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100% 출자를 통해 서울대기술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이후 다양한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다. 목승환(44) 서울대기술지주회사 대표는 “서울대기술지주의 펀드 운용자금이 최근 1000억원에 육박했고, 지금까지 투자한 회사는 150곳을 넘어 국내 대학 중 가장 많다”고 했다. 목 대표를 만나 서울대의 스타트업 투자 이야기를 들었다.

목승환(44) 서울대기술지주회사 대표. 2016년 투자전략팀장으로 입사해 2019년 대표 자리에 올랐다. /더비비드
◇대학 이름 걸고 만든 투자회사

서울대학교 기술지주회사의 활동은 민간 투자사와 다를 바 없다.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와 육성 활동을 한다. 현재 30개 회사가 서울대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10개 펀드를 통해 투자한 기업은 150개가 넘는다.

Q. 서울대학교 기술지주회사가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서울대기술지주가 하는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학내 전문 인력을 활용한 자회사 운영이다. 서울대기술지주는 해당 기업들의 지분의 10~20%를 보유한다.

두번째는 투자조합 결성을 통한 스타트업 투자다. 매년 50곳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2017년 이후 10개의 펀드를 조성해 1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했다. 카카오, 신한자산운용, 두나무 등 대기업과 다른 대학의 기술지주, 주요 자산운용사가 출자사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엔 투자이익의 일부를 학교 창업 발전기금으로 환원하는 최초의 대학 기부형 펀드도 결성했다.

마지막으로 스타트업 육성이다. 2018년 전문 보육 창업기획자의 지위를 얻었다. 팁스, 경기WINGS와 같은 창업 지원 프로그램의 운영사로 활동하고 있다. 단순 자금 투자 활동이 아닌 후속적인 기업 육성 활동도 한다는 점에서 전문 엑셀러레이터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핀테크 기업 ‘트래블월렛’, AI 반도체칩 개발 기업 ‘리벨리온’, 탄소나노튜브 전문 기업 ‘어썸레이’ , 부동산 조각 투자 기업 ‘루센트블록’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의 스타 기업들이 서울대기술지주의 씨드 투자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서울대 동문 창업가 출신
서울대기술지주에 합류한 이후 사업 모델 다각화를 추진한 목 대표. /더비비드

목승환 대표는 스스로 창업가 출신이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졸업 후 2004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입사해 신사업팀장까지 올랐다가 2009년 회사를 나와 창업했다. 애플리케이션 기획·개발 회사를 차려 8년 동안 100종 이상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2016년 회사를 투자사에 매각하고, 서울대기술지주에 투자전략팀장으로 입사했다.

서울대기술지주에 합류한 이후 사업 모델 다각화를 추진했다. 자회사 육성을 넘어, 펀드 조성을 통한 스타트업 투자 확대를 주도했다. 역량을 인정받아 2020년 서울대기술지주의 첫 내부 승진 인사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목 대표는 투자 집행 전 기업 대표와 직접 여러 번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을 고집한다.

Q. 스타트업 대표와 여러 번 만나며 무엇을 평가하는 건가?

“스타트업 경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위기 극복역량’이라고 보는데, 대표와 자주 대화를 나누면 문제해결능력이나 상황대처법이 읽힌다. 첫눈에 아이디어에 반해 투자를 집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몇년 동안 친분을 쌓아오다 투자를 집행하기도 한다.”

Q. 대화로 가늠할 수 있나?

“사람들은 ‘투자’라고 하면 재무제표를 분석하면서 수익성, 성장성을 주로 볼 것 같지만 투자를 고려할 때 생각보다 정성적인 걸 많이 본다. 스타트업 대표의 성향, 성격, 끈기 등이다. 대화를 할 때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어보고, 등산을 같이 해보기도 한다. 스타트업은 아무리 기술, 서비스가 좋아도 안정적인 매출을 내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위기를 겪는다. 한 회사의 경영자이자 직원을 이끄는 리더가 끈기가 없고, 문제 해결에 대한 순발력이 없으면 되겠나.”

◇투자자 지갑 열게 만드는 스타트업의 특징
서울대기술지주회사 입구 모습. /더비비드

글로벌 금리 인상과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스타트업 혹한기라는 말이 나온다. 스타트업은 미래 가치를 담보로 투자금을 유치하거나 대출을 받는데, 금리가 오르면 재무상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 불황기에는 투자사들도 몸을 움츠린다. 투자금을 새로 유치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Q. 요즘 투자를 아예 하지 않는 투자사도 있던데,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는 어떤가?

“투자할 스타트업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워졌을 뿐, 2023년 투자 규모를 축소할 계획은 없다. 2022년 12월 9, 10호 펀드 결성을 했고, 출자금을 통해 내년에도 40곳 이상의 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집행할 예정이다.”

Q. 서울대 기술지주회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의 특징을 알려달라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위주로 살핀다. 경쟁자가 많은 레드오션 시장은 되도록 지양하고,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회사인지를 평가한다. 무조건 희소하고 기발한 기술만 강조하는 게 아니다. 어디선가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없던 서비스여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지를 본다.”

Q. 결국 유망산업 분야 아닌가?

“일견 맞다. 미래 먹거리 산업들이다. 친환경, 에너지, 이차전지, 엔터테인먼트 등의 분야다. 다만 ‘앞으로 돈이 될까’의 관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앞으로 이익을 줄 수 있는 분야인가’라는 관점에서 본다.”

숙박업소 침구세탁 대행 및 침구 재활용 스타트업 제클린 차승수 대표(왼쪽)와 서울대 기술지주 목승환 대표. /목승환 대표 제공

Q. 예를 들자면?

“숙박업소 침구세탁 대행업체 제클린이란 곳이 있다. 숙박업체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폐기되는 침구에서 실을 뽑아 재활용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이밖에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해외 송금을 하면서 수수료는 0원으로 만든 핀테크 스타트업 ‘트래블월렛’, 하나의 전구로 다양한 밝기와 파장을 낼 수 있는 엑스레이 튜브를 만든 ‘어썸레이’, 드론 기술을 이용해 건설 현장 산업 재해를 예방하는 ‘엔젤스윙’ 등이 서울대 기술지주회사가 투자한 대표 스타트업들이다.

Q.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할 때 유념할 게 있다면?

“투자사만 선택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도 투자사를 고른다. 투자사와 스타트업 서로 핏을 확인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3가지 기준 중에서 2가지 이상 의견이 맞을 때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게 좋다.”

서울대기술지주회사 건물 전경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Q. 3가지 기준을 알려달라

“스타트업이 속해 있는 산업 분야에 이해도가 있는 투자사여야 한다. 스타트업 대표도 투자사의 구성원이 어떤 이력을 밟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투자사는 단순히 돈만 대는 곳이 아니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이해도는 기본이다. 업계에 대해 잘 모르는 투자사는 오히려 사업에 방해되는 조언을 할 뿐이다.

후속 투자를 끌어 낼 수 있는 투자사인지도 봐야 한다. 특정 투자사가 투자하고 난 뒤 저절로 추가 투자 제의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공신력 있는 투자사의 안목이 투자의 물길을 뚫어주는 경우다. 아니면 투자사가 엑셀러레이팅에 충실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절대적 투자 금액보다 후속 투자를 유치할 힘이 있는 투자사가 스타트업에 더 이롭다.

마지막으로 투자사도 브랜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에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정체성이 뚜렷해야 한다,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투자사가 많은데, 투자사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은 대기업 이전 단계가 아니다
환하게 웃어보이는 서울대기술지주 목승환 대표. /더비비드

Q. 스타트업이란 무엇인가?

“흔히 스타트업의 지향점을 대기업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대기업 중심 경제 체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경제 체계를 깨는 역할을 하는 게 스타트업이다. 1998년부터 13년간 세계 휴대폰 점유율 1위였던 핀란드의 노키아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몰락했을 때, 핀란드 경제를 빠르게 일으켜 세운 건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적이었던 정부와 산업체계였다. 당시 노키아 출신 엔지니어들이 곧바로 유명 게임사 ‘슈퍼셀’을 차려 대성공을 이뤘다. 산업구조 변화에 더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다.”

목 대표는 ‘기획 창업’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엑셀러레이터가 먼저 창업 분야·아이템을 선정해 창업 멤버를 꾸리는 창업 육성 방식이다. 그는 “투자나 기업 육성 방식에 있어서 대학 내부로 인력과 자원을 가두지 않겠다”며 “열린 시각으로 스타트업의 지원군이 될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