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끈 황희찬 선수의 포르투갈전 역전 결승골은 국제축구연맹(FIFA)도 인정한 명장면이었다. 당시 골 뿐 아니라 황 씨의 독특한 세리머니 때 드러난 검은 조끼도 큰 관심을 모았다. 조끼의 정체는 경기력을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 전자성능추적시스템(EPTS)이다.

IT 기술의 발전에 따라 선수 개인의 신체 상태와 기량을 정밀 분석하는 ‘스포츠 사이언스’가 뜨고 있다. 축구과학 스타트업 핏투게더의 윤진성(36) 대표를 만났다.

축구과학 기업 핏투게더의 윤진성 대표. /핏투게더
◇축구도 과학입니다

핏투게더는 착용형 EPTS ‘오코치’(OHCOACH)의 개발사다. 오코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드웨어는 선수들이 입는 조끼 후면에 부착된다. GPS가 내장된 소형 웨어러블 기기로 훈련과 경기 시 활동량, 가속도, 스프린트 횟수 등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물은 오코치 플랫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코치진은 선수들의 운동능력, 피로도, 부상 위험도 등을 예측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누적된 기록과 활동량 변화 폭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다만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이 착용한 조끼는 핏투게더 제품은 아니다.

오코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하드웨어의 경우 선수들이 입는 조끼 후면에 부착된다. /핏투게더

윤 대표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2012년 한 바이오헬스 스타트업의 창립 멤버로 합류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첫 발을 디뎠다. 이곳에서 스타트업이란 어떤 조직이고 스타트업이 잘 운영되려면 어떤 것들이 이뤄져야 하는지 배웠다.

- 창업 계기는요.

“첫 직장에서 기술 사업화에 눈뜬 후 창업에 쭉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2014년 취미 삼아 ‘아지트’란 이름의 조그마한 가게를 열어서 운영했어요. 명목상으로는 주류를 파는 주점이었지만 창업 기반을 다지기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했습니다. 여러 창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요. 아지트에서 창업 스토리를 들려주는 선배 창업자들의 모습을 보며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아지트를 공동 운영자 중 합이 맞는 이들과 손을 잡고 웨어러블 기기를 아이템으로 비즈니스를 해보기로 했어요.”

아지트 시절의 모습. 윤 대표는 경기를 하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한다. /핏투게더

- 창업 아이템으로 웨어러블 기기를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0년대 중반 들어 사물인터넷(IoT) 관련 기술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핏빗(fitbit), 애플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웨어러블 기기가 일반 소비자보다는 전문가 집단이나 타깃이 명확한 B2B 시장에 유용할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기기에 정교한 센서를 적용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사용자에게 순영향을 끼칠 수 있거든요. 특히 임산부, 군인, 노인, 운동선수처럼 매 순간의 의사결정이 중요한 사용자층에게 데이터들이 큰 가치를 줄 수 있습니다.”

- ‘축구 시장’에 주목한 계기는요.

“B2B 타깃 중에서도 스포츠는 훈련 내용과 기량을 기록 및 관리하는 코치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카테고리입니다. 코치의 ‘돌봄 행위’야 말로 웨어러블 기기로 측정한 데이터를 적용하기에 제격인 영역이죠. 수집한 데이터를 관리 및 활용하는 게 코치의 직무 역량인 시장이니까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어요. 스포츠는 전 세계가 공통된 규칙을 공유하는 몇 안 되는 시장입니다. 일단 진입해서 일정 궤도에 오르면 해외 비즈니스까지 펼칠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는 가장 시장규모가 큰 종목이고요. 무엇보다 핏투게더의 핵심 멤버들이 모두 축구 마니아입니다. 저 역시 축구를 하다가 양쪽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입은 적이 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해요.”

◇전략적으로 피라미드의 하단 공략
창업 초기 핏투게더 구성원들의 모습.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고 있는 인물이 윤 대표다. /핏투게더

2017년 초 핏투게더 법인을 만들어 EPTS 기기 ‘오코치’ 개발에 착수했다. 2018년 첫 제품을 출시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 제품 개발 시 무엇에 주안점을 뒀나요.

“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EPTS 시장에 20여 곳의 경쟁사가 있는데요. 항상 ‘데이터 정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사실 일상생활용 데이터에서는 10m 정도의 오차가 발생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몸값이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인 선수의 기량을 측정하는 도구로서의 데이터는 정확해야 합니다. 그래서 초기 3년간은 데이터 정확도를 제고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실시간 이동 측위 위치 정보 시스템(RTK-GPE)을 제품에 적용해 수십미터에 달하는 GPS 방식의 오차를 센티미터 단위 수준으로 줄였죠.”

오코치 솔루션을 개발 중인 핏투게더 구성원들. /핏투게더

-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며, 데이터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합니다.

“훈련 및 경기 중 개별 선수의 스프린트나 폭발적인 가속의 횟수, 활동량 등을 수집합니다. 코치진은 활동의 질, 피로도, 성장세, 부상 회복도 등의 정보를 토대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설계합니다. 오코치로 습득한 데이터는 작전과 전술을 짜는데도 활용됩니다. 미드필더와 공격수에게는 다른 덕목이 요구되는데요. 인공지능이 선수별 특성을 파악해 어떤 훈련이 효과적인지 추천해 줍니다. 훈련을 통해 기량이 증대한 것을 정량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죠.”

- 캐터펄트(Catapult), 스탯스포츠(STATSports) 등 세계적인 EPTS 기업이 이미 있지 않나요.

“지금까지 EPTS 시장은 위의 두 기업 중심으로 재편돼 있었습니다. 게다가 엘리트 중심의 시장이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유럽 5대 리그 구단에서 주로 사용됐고 가격도 굉장히 고가였죠. 저희는 이미 고도화된 시장 대신 성장하는 시장에서 기회를 찾았어요. 유소년 구단, 세미프로 선수, 여성 선수층을 타깃으로 설정했고, 가격을 타깃에 걸맞게 형성했습니다. 곧 확대될 시장을 선점해서 큰 점유율을 확보하는 전략이죠.”

◇해외 구단에 솔루션 공급
핏투게더는 창업 초기 센서의 정확도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핏투게더

하단 공략 전략은 통했다. 2019년 한국프로축구연맹과 공식 파트너십 계약을 맺어 K리그 구단과 주니어 구단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중이다. 해외에도 진출해 이탈리아의 라티오, 터키의 베식타스, 스코틀랜드의 셀틱 등의 구단과 계약을 맺었다. 지금까지 전세계 69개 국가 540개 팀이 훈련에 오코치를 활용하는 중이다.

품질도 인정받았다. 오코치는 2020년에 이어 2022년 FIFA 퀄리티 프로그램에서 정확도 1위를 차지했다. FIFA 퀄리티 프로그램은 축구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첨단 과학기술 및 장비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하기 위해 FIFA가 실시하고 있는 품질 및 성능 테스트다. 지난해 11월, FIFA로부터 EPTS부문 ‘우선 공급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코치를 착용한 유소년 축구단의 모습. /핏투게더

- 뿌듯한 만큼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 같아요.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습니다. 여러 기관과 투자자로부터 도움을 받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산업진흥원(SBA)으로부터 지원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해외로 진출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식재산권 관련한 지원을 하는 ‘서울 글로벌 IP스타기업 육성사업’과 중소기업의 근무환경 제고를 지원하는 ‘고용안정 레벨업 프로젝트’에 선정됐는데요. 덕분에 자칫 간과할 뻔했던 특허 이슈를 사전에 점검할 수 있었고, 회사 구성원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근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핏투게더는 FIFA로부터 EPTS부문 우선 공급자로 선정됐을 때, FIFA 테스트 현장. /핏투게더

- 어느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현장의 인식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핏투게더를 처음 창업했을 때만 해도 EPTS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초반엔 교육에 중점을 뒀습니다. 데이터 활용법과 데이터를 활용한 훈련의 강점 등을 꾸준히 교육하면서 코치님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회를 꾸준히 찾아 나섰죠. 이제는 EPTS를 꼭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주류입니다. 기술을 습득해서 활용하려는 의지도 강하고요. 데이터 측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훈련을 멈추는 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변화를 목격하면서 저희가 5년 전에 생각한 것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어요. 참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윤 대표는 창업 초기 축구 경기장을 다니며 EPTS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핏투게더


“영상 데이터를 적용한 융복합 솔루션을 준비 중입니다. 웨어러블 기기로 수집하는 데이터의 한계점은 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센서로 측정한 데이터에 경기 영상 분석 결과를 연동하면 훈련과 경기의 맥락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데이터가 나왔는지 알 수 있는 거죠. 타 스포츠 종목으로 저변을 확대할 계획도 있습니다. 현재 해외의 럭비 구단과 시범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요. 차츰 럭비와 미식축구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혀갈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본질’에 충실하는 것인데요. 오코치를 사용하는 모든 팀에게 좋은 솔루션을 공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