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위기 신호가 오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다리로 활약 중인 윤미영(왼쪽) 씨와 한국폴리텍대학 임춘건 기획이사(오른쪽). /윤미영 씨 제공

베트남 귀환 이주여성의 자녀 윤미영(29) 씨는 10대 때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의 나이에 조우한 한국은 미지의 땅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모든 게 낯설었다. 이 땅엔 나를 이해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막막함도 느꼈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직업인으로 성장했다.

그가 자립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한국폴리텍대학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 직업교육 기관 한국폴리텍대학은 다문화 가정 증가라는 인구구조 변화에 주목해 다문화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교육 지원을 하고 있다. 다문화 청소년의 취업과 진로를 지원하는 건 물론, 외국인 근로자 대상의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윤 씨를 만나 자립기를 들었다.

◇한국어를 하나도 몰랐던 소녀가 학점 4.4점으로 졸업한 비결

큰 행사에서 통역 중인 윤 씨의 모습. /윤미영 씨 제공

윤 씨는 현재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 기업의 주재원으로 근무 중이다. 효성그룹의 자회사인 효성TNS에서 ATM 기기를 제작하는 생산관리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과 베트남의 다리로 활약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베트남 청사에서 열린 긴급 부총리-기업 면담회에 재직 중인 기업의 대표와 참석해 한국어, 베트남 통역을 맡았다. 베트남 정부 공식 뉴스에 윤 씨의 모습이 보도됐다.

윤 씨는 다문화 가정에서 성장했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중학생때까지 하이즈엉 성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는데, 낯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때 다솜고 입학이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 다솜고는 기술 교육을 통해 다문화 청소년의 취업과 진로 결정에 도움을 주는 교육 기관이다. 컴퓨터기계, 에너지설비, 스마트전기 등 세 학과에서 졸업 후 바로 취업이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 교육을 진행한다. 윤 씨는 컴퓨터기계과에 진학했다.

윤 씨는 다솜고에서 한국어와 기술을 배웠다. /윤미영 씨 제공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다솜고에서의 3년은 값진 시간이었다. “한국어와 기술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았습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과 서로 공감하면서 성장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배울 계기가 되기도 했죠. 다양한 과목을 배우고, 방과 후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학교 생활을 풍성하게 보냈습니다. 해외 봉사활동, 투어리스트 동아리 등을 통해 국내 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는데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습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른 채로 입학했다가, 학교의 전설이 되어 졸업했다. “3년간 열심히 공부해 전공 관련 자격증을 3개 취득했습니다. 다솜고 역사상 최다 자격증 보유자 중 한 명으로, 전교에서 단 두 명만 이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학교에서 다양한 기술을 배웠습니다. 비치된 기계와 공구 모두 비싼 장비였죠. 좋은 환경에서 공부에 몰입한 덕에 한국어도 빠르게 습득했습니다. 한국어를 못했던 제가 경희대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3000명의 관중 앞에서 ‘경상남도 사투리’를 주제로 연설을 해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경희대 한국어 중급 문법책에 제 얼굴이 실렸죠.”

경희대 한국어 중급 문법책에 실린 윤 씨의 모습. /윤미영 씨 제공

다솜고 졸업 후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 컴퓨터응용기계설계과에 진학했다. “다솜고에서 배운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기계 설계와 전문 지식을 더욱 깊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기계설계산업기사, 컴퓨터응용가공산업기사, 치공구설계산업기사, 컴퓨터응용기계제도기능사, 컴퓨터응용밀링기능사, 컴퓨터응용선반기능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실력을 쌓았죠.”

윤 씨는 다솜고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견문을 넓혔다. /윤미영 씨 제공

입학 초기에는 서툰 한국어 실력 때문에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학교 교수들이 그를 독려했다. “힘들어할 때마다 교수님께서 저를 불러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조급해 하지 말고 네 페이스대로 하면 된다’고 다독여 주셨죠. 이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몰라요.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감 선생님들은 가족같이 따뜻한 존재였습니다. 시험 기간에 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지쳐 있을 때면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며 조금만 더 힘내자고 응원해 주셨죠. 이분들의 사랑과 가르침 덕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한국 기업 주재원으로 취업

윤미영 씨는 다솜고와 한국폴리텍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윤미영 씨 제공

주변의 응원과 피나는 노력은 달콤한 결실로 돌아왔다. 학과 동기 72명 중 상위 10위 내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학점은 4.5점 만점에 4.4점을 기록했다. 졸업 후 바로 취업하지 않고 추가 자격증 공부를 했다. 호주 유학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때 한양디지텍의 베트남 현지 자회사인 한양디지텍비나로부터 면접 요청을 받았다. 경남 사천에서 경기도 수원까지 이동해, 대표이사 면접까지 한 번에 통과했다.

2019년 한양디지텍비나에 입사해 베트남 주재원으로 발령 받았다. “현지 공장이 막 설립된 시점이라 한국어와 베트남어에 능숙한 인재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젊은 여성으로서, 그것도 첫 직장에서 관리자로 근무한다는 게 부담이 됐습니다. 공장 직원들은 20대 여성 관리자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죠. ‘어린 여자가 뭘 안다고 우리에게 일을 시키냐’는 반응에도 직면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고, 직원들과 소통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그렇게 4년을 보냈어요. 제 의견 하나로 공장이 가동되는 것을 보며 ‘많이 성장했구나’ 느꼈습니다. 힘든 만큼 배운 것도 많았어요. 언어와 기술 지식이 비약적으로 늘어,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업무 관련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합니다. 지난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줬죠.”

(왼쪽부터) 회사에서 근무 중인 윤 씨, 직장 동료들과 회식하는 윤 씨의 모습. /윤미영 씨 제공

4년간 경험도 쌓고 맷집을 키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 자리에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어요. 공장과 집을 오가는 반복적인 생활 속에서, 내 20대가 이렇게 흘러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제 삶을 찾기 위해 베트남의 수도이자 대도시인 하노이로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지인을 통해 효성TNS가 채용 중이라는 정보를 접했다. 망설임 없이 지원해 당당히 한 번에 합격했다. 2023년 효성TNS로 이직했다. “효성TNS에서 한양디지텍비나 시절과 비슷한 업무를 합니다. 현지 채용과 생산관리 및 CS 담당 업무를 맡고 있죠. 하지만 취급하는 제품이 완전히 달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입니다. 다행히 따뜻하고 긍정적인 상사와 동료 덕분에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무대입니다.”

한국폴리텍대학-유엔인권정책센터(코쿤) 업무협약식에서 강연 중인 윤 씨. /한국폴리텍대학

한국폴리텍대학은 제2, 제3의 윤 씨를 배출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다문화 청년을 위한 특화교육을 신설해 운영 중이다.. 올해도 이어 교육생 모집을 진행한다. 또한, 산업현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직업교육과 특수목적 한국어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윤씨는 다솜고와 한국폴리텍대학이 경제적, 사회적 자립의 발판이 돼 줬다고 강조했다. “다솜고에 재학했던 3년 동안 학비, 기숙사, 식사를 지원받으며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에서 전문적으로 기술을 익혀 사회에 당당히 나설 수 있었죠. 두 곳에서 만난 은사님을 통해 얻은 교훈이 있어요. 받은 만큼 나누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교훈이라는 사실을요.”

베트남 정부 공식 뉴스에 보도된 긴급 부총리-기업 면담회 현장. /윤미영 씨 제공

실제로 ‘나눌 수 있는 자리’만 생기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간다. “2024년 8월 베트남 하이퐁사무소 한베돌봄센터에서 한국폴리텍대학-유엔인권정책센터(코쿤) 업무협약식이 열렸는데요. 다솜고 선생님이 이 자리에서 다문화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줄 수 있냐고 요청해왔어요. 저는 연차를 내서라도 가겠다며 망설임 없이 수락했죠.”

이 자리에서 다문화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행사에서 저와 비슷하거나 저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을 공유했어요.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좋은 멘토와 기회를 만나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죠. 그날 코쿤센터와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다문화 청소년 친구들이 저를 통해 동기부여 받을 수 있게, 제가 먼저 빛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요. 제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후배들도 더 열심히 꿈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까요.”

출장 중인 윤 씨의 모습. 윤 씨는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윤미영 씨 제공

마지막으로 아낌없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지금 이 순간 외롭고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은 막막함이 덮칠 수도 있죠. 하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길 바라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잊지 마세요. 힘든 시간을 견뎌낸 끝에 상상도 못했던 멋진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다솜고와 한국폴리텍대학에서 다양한 기회를 누리세요. 두 곳은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니라 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무대입니다. 자신을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순간이 꼭 찾아올 거예요.”

※이 콘텐츠는 한국폴리텍대학과 공동으로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