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해외 주식 투자에 관심이 커진 직장인 박모(34)씨는 지난 10월 증권사에서 IRP(개인형퇴직연금) 계좌를 개설했다. IRP 계좌에서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ETF(상장지수펀드)를 거래하면 매매 차익 등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 운용 수익에 대해 연금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세율이 낮아 오래 두고 돈을 굴리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테슬라, 애플 등 미국 기술주에 투자하는 ETF를 매수해 벌써 10%가량 수익을 올렸다”며 “연말정산에서 납입액에 대해 세액 공제까지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연말정산을 앞두고 절세 ‘필수품’ 중 하나인 IRP에 가입자들 관심이 커지고 있다. ’13월의 월급'을 최대한 두둑이 불리기 위해서다. 그뿐 아니라 올해는 주식 등 금융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IRP를 활용해 ETF 등에 투자하는 가입자도 늘고 있다. IRP 전체 적립 규모는 작년 말 24조8019억원에서 지난 3분기 말 30조5093억원으로 23% 늘었다.

◇IRP, 개인이 마련하는 퇴직연금

현행 연금 제도는 DB·DC형 퇴직연금과 IRP, 연금저축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IRP는 개인이 스스로 설계하는 퇴직연금이다. 회사가 금융사에 위탁하는 직원 퇴직금으로 운용되는 DB·DC형 퇴직연금에 가입된 근로자도 이와는 별개로 금융사를 골라 IRP에 가입할 수 있다. IRP는 소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개설 가능하기 때문에 자영업자·프리랜서·군인 등도 가입할 수 있고, 연간 한도(IRP·DC·연금저축 합산 1800만원) 내에서 원하는 만큼만 납입하면 된다. 납입한 돈으로 예금부터 펀드·채권 등까지 투자할 수 있지만, 상품에 따라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IRP는 DB·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퇴직 후 퇴직금을 수령하는 계좌이기도 하다. DB·DC형 가입자의 300만원 넘는 퇴직금(명예 퇴직 제외)은 의무적으로 IRP 계좌로 받게 돼 있다. 이전된 퇴직금과 개인 납입금 등 IRP 계좌에 모인 돈은 만 55세 이후(개인 납입금만 있을 경우 가입 5년 경과 후 가능) 연금으로 다달이 수령할 수 있고, 시점 관계 없이 언제든 중도에 해지하고 전체 인출할 수도 있다. 일부 금액 부분 인출은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등 정해진 중도 인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절세 효과를 생각하면 연금으로 받는 게 낫다. 연금으로 받으면 퇴직금에 부과되는 퇴직소득세의 60~70%만 내면 되고, 운용 수익에 대해서도 연금소득세(3.3~5.5%)가 적용돼 일시에 찾을 경우 내야 하는 기타소득세(16.5%)보다 저렴하다.

◇연말정산 시 최대 148만원 환급

무엇보다 큰 장점은 연말정산 시 IRP 납입금에 대한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소득에서 떼어간 세금 중 IRP 납입액에 대한 세금만큼을 돌려 받을 수 있어 절세 효과가 크다. IRP·DC·연금저축을 합산해 연간 납입액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가입자의 연간 총급여가 5500만원(종합소득금액 4000만원) 이하면 16.5%, 초과 시 13.2%의 세금을 공제해준다. 연금저축 단독으로는 세액공제 한도가 400만원이기 때문에 연금저축 가입자라면 IRP에 추가 가입해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챙길 수 있다. 700만원 한도를 채워 납입했다면, 최소 92만4000원에서 최대 115만5000원의 세금을 환급받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올해 연말정산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일부 가입자에 한해 납입 한도가 900만원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조건에 해당한다면 더욱이 IRP 가입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50세 이상이고 연간 총급여가 1억2000만원 이하이며,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가 아닐 경우 연간 900만원 한도가 적용된다. 최대 148만5000원까지 환급받을 수 있다.

◇올해 증권사 IRP로 갈아타기 활발

연금 개시 또는 인출 시점까지 매매 차익에 대한 과세가 늦춰지는 데다, 그간 발생한 차익과 손실을 합한 최종 운용 수익에 대해서만 세금이 부과돼 유리하다. 적립금을 은행·저축은행 예금, 원리금보장 ELB(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 등 원금과 이자를 지킬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상품에 넣어두는 것도 가능하고, 채권형·주식형 펀드나 부동산 펀드, ELS(주가연계증권) 등 투자 위험이 따르지만 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상품에도 투자할 수 있다. 상품 종류는 금융사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최근에는 투자형 상품이 많은 증권사 IRP로 가입자들이 몰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증권의 경우, 올 들어 11월 말까지 고객이 타 은행·보험사에서 IRP 계좌를 옮겨온 규모가 963억원으로, 지난 한 해 규모(385억원)를 크게 넘어섰다. 주요 증권사 IRP는 주식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는 ETF 거래가 가능하고, 배당 수익이 나오는 상장 리츠(부동산 투자펀드)에도 투자할 수 있다. 다만 IRP는 노후 대비 자산인 만큼 주식형 펀드나 ELS 등 투자 위험도가 높은 상품에는 적립금의 최대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게 돼 있다. 인버스(반대 방향 투자)·레버리지(두 배 이상 수익률 추구) ETF 등도 매매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