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암호화폐의 대장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비트코인 1코인 가격은 지난 21일 현재 2만3444달러(약 2600만원)를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이던 지난 3월 초 5200달러까지 하락했던 시점부터 계산하면 9개월 사이 상승률이 300%가 넘는다.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던 지난 2017년 12월에 2만달러를 넘어섰다가 폭락한 이후 최근 코로나 사태를 타고 부활했다.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암호화폐의 부활은 3년 전처럼 금융 거품인가? 아니면 새로운 추세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금융전문가 가운데 암호화폐를 오랫동안 연구한 최공필(62) 한국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 센터장을 찾았다. 그는 1988년 경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거시경제와 금융 부문 연구로 보내다 최근 6년간 암호화폐와 그 바탕 기술인 블록체인과 씨름해 왔다. 지금은 금융감독원 블록체인 발전포럼의 위원장도 맡고 있다. 2018년에는 ‘비트코인 레볼루션’이라는 책도 냈다.

최 위원은 “최근 암호화폐 가격 폭등은 주로 중앙은행이 코로나 사태에 맞서 돈풀기 정책을 하면서 촉발됐다”면서도 “자체 시장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가 해결된다고 해서 다시 없던 일처럼 원상복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암호화폐의 제도권 수용이 점점 빨라지고 있으므로 투기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산업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오후 2시 50분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 건물 7층의 한국금융연구원 내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무실 책상 앞에 작은 잎을 가진 2m 높이의 나무와 그 옆의 연두색 물뿌리개가 인상적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악몽

―언제 비트코인 같은 가상 화폐 이야기를 처음 접했나?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는데 한국의 은행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를 확보하려고 매우 애를 썼다. 연구원을 떠나 잠시 우리금융지주 전략담당 전무로 있던 나도 마찬가지로 돈을 꾸러 다녔다. 그런데 금융시장에서 자체 노력으로 달러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그 때 글로벌 금융시장에 안전자산이 원활히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와중에 비트코인이 2009년 1월 3일에 첫 출시됐다. 내 생일이라서 날짜까지 기억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건물 앞에서 미국인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조선일보DB

―비트코인 첫 출시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떻게 느꼈나?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잊고 있었다. 그리고 4년쯤 뒤인 2014~2015년쯤에 디지털 네트워크가 발전했지만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다 강력한 규제를 받게되면서 금융소외 문제가 부각됐다. 당시 KDI(한국개발연구원)-KOICA와 같이 미얀마에 금융 포용성을 높이는 사업에 참여했다. 케냐와 달리 기본 금융 인프라는 깔려 있는데 왜 작동이 안될까 생각해봤더니 은행 중심의 대출 규제가 너무 많고 금융 중개자들이 챙기는 몫이 너무 컸다.

그 때 비트코인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도덕적 해이와 대마불사가 심화되는 기존 금융 시스템과는 달리, 금융 양극화가 심해진 상태에서 금융중개자 없이 금융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서 비트코인이 매우 매력적이고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가능성만 보면 허가 받은 누구라도 가치 이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금융 포용성의 문제도 해결하고, 해외 송금에서 생기는 과도한 수수료와 느려터진 국경간 거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무엇보다도 기존 금융체제의 허물어진 신뢰 토대를 어느 정도 지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눈에 띄였다.”

―비트코인을 활용해 미얀마의 금융 포용성을 높였나?

“연구를 계속하면서 미얀마 정부에 핀테크와 암호화폐 등을 활용해 금융 포용성을 높이라고 제안도 했다. 그런데 해보니 공적 원조기구의 여러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시장인프라, 지배구조, 이해당사자들의 인센티브 같은 구조적 문제로 효과는 제한적 수준에 머물렀다. 예를 들어 미얀마 같은 곳은 해외 원조를 받으면 중간 누수가 커서 실제 수혜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20% 밖에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이해관계의 엄청난 변화를 수반하는 디지털 기반 플랫폼이 도입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디지털 혁신과 같이 근본적 차원의 광범위한 변화를 수반하는 기술적 가능성이 현실에 접목되려면 다방면의 검증 과정과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한 이유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가격 추이./코인베이스

이어 인터뷰의 메인 주제인 암호화폐 가격 폭등으로 바로 넘어갔다.

―비트코인 가격이 10월 이후 2배로 올랐다. 급등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 사태 이후 무제한 양적완화가 장기화되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돈이 워낙 많이 풀리다 보니, 발행량이 제한된 비트코인이 각광을 받았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 때에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돈을 아주 많이 풀었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가 한 숨 돌리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일어날 것이라는 심리가 팽배하고 가치보전 수요가 생기면서 암호화폐가 각광을 받고 있다. 안전 자산이면서 수익률도 좋다. 금은 1년 전보다 약 30% 정도 올랐는데, 비트코인은 200% 넘게 올랐다.

또 금융업체들이 암호화폐를 거래나 투자 수단으로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암호화폐를 보유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호재이다. 지난달 전 세계적으로 3억50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금융결제업체 페이팔이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암호화폐 지수를 내겠다는 업체도 있다. 또 기관투자자들이 투자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편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5G(세대) 시대가 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 하나면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는데, 이런 상황에서 금융거래 수단으로 적합한 것이 암호화폐이다. 이처럼 제도권 금융 편입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암호화폐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밀어부치고 있다. 이 움직임이 암호화폐의 부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중국이 치고 나오고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들도 거의 모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도 암호화폐, 즉 암호자산의 부활과 무관치 않다. 단순히 기존 주체들의 시장지위 확보 차원의 노력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인민은행 본점./위키피디아

거품인가 아닌가

―2017년에도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했다가 폭락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때처럼 거품이 아닐까?

“일방적으로 거품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많지 않다. 새로운 환경과 시장 수요에 대응한 측면이 크다. 미래에는 시장이 이러한 암호화폐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2017년 광풍이 죽은 뒤 금융시장의 관심은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금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해법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관심이 다시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로 가고 있는 것이다. "

―중앙은행의 돈풀기가 암호화폐 가격 폭등의 가장 큰 요인이라면 만약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2~3년 뒤에 통화량을 줄이면 인플레이션이 억제되면서 암호화폐 가격이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암호화폐의 약점은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앙은행들의 조그만 변화조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예전 수준으로 완전히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연결된 환경에 보다 적합한 암호화폐 자체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법정화폐 지원 없이도 최소한의 생존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시장이 됐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영향은 받겠지만 예전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건물./위키피디아

―비트코인 가격은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갈 것이라고 보나?

“모르겠다. 다만 2100만 단위로 발행량이 제한된 비트코인은 상당량이 채굴이 끝나서 앞으로 신규 발행량이 줄어드니 점점 가치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투자자 입장이라면 지금 사도 나중에 이익을 거둘 수 있을까?

“암호화폐 투자의 목적은 새로운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동기부여를 위한 유인)를 주는 것이다. 서민들의 경우 사더라도 여유 자금으로 암호화폐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해야 한다. 암호자산 시장은 장기적으로는 커갈 것이다.”

한계에 달한 금융시스템

―암호화폐 각광 현상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어떤 의미를 갖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암호화폐 투자가 재산 형성이나 투기 목적이라고 보지만, 경제학자들은 암호화폐의 득세는 현재 금융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미라고 본다. 동시에 미래 준비에 대한 인센티브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 현재 금융 시스템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화폐의 발행을 독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암호화폐는 화폐의 발행이나 유통 과정이 이용자들의 합의와 동의에 기반하고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을 독점하던 단계에서 이제는 개개인 스스로 일정 수준 은행과 기타 중개인들의 기능을 수행하는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최 위원은 위에 설명한 암호화폐의 특징을 구현하는 블록체인과 분산원장 기술도 간단히 설명했지만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을 듯 해 생략한다.)

―암호화폐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있나?

“암호화폐의 가치를 담보할 만한 수단이 없던 1세대 암호화폐보다 진화한 것이 최근의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다.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 통화와 연동되어 고정 환율로 거래된다. 이 스테이블 코인은 실제로 금융거래가 중간매개자를 통하지 않고 거래 당사자 간에 직접 접촉하는 디파이(decentralized finance) 금융의 핵심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금융기능이 작동하려면 거래를 보증하는 별도의 신뢰 주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법적인 보증 주체가 없으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거래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암호화폐는 거래가 개방되어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안전하고 편리한 금융 거래를 하려면 여전히 규제와 감독 기능이 필요하다. 누군가 사기를 쳐 문제가 생겼을 때 최종 책임자 역할을 누가 해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것은 중앙은행과 정부가 해 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법정 화폐가 사라질 수 없다.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처럼 모든 금융거래 수단으로 사용되는 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지금은 주로 가치 저장이나 제한적인 거래 수단으로 활용되는 수준이다.”

시가총액 순으로 본 암호화폐 순위./코인마켓앱

암호화폐와 법정화폐

―디지털 기술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시간이 가면 암호화폐가 대세를 이루고 법정 화폐가 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법정화폐에서 암호화폐로 극단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두 요소의 중간적인 방향으로 진화해 간다고 봐야 한다. 법정 화폐가 건물의 기둥이라면 암호화폐는 벽이다. 둘이 같이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중앙은행과 정부가 옛날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약간씩 변화를 허용하는 것이다.”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이 빠르게 발전하면 암호화폐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대부분 사람들이 블록체인 시스템이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보다 진보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다. 디지털 환경 하에 해킹 위험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포용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보완하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블록체인도 아직 킬러 앱이 없다. 따라서 블록체인은 암호기술 및 작업증명과 더불어 암호화폐 출현을 가능케한 핵심 기반이지만 모든 종류의 암호화폐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블록체인과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미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달러를 대량으로 발행하면서 발행총량이 제한된 비트코인이 안전자산으로 주목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17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이 미국 달러를 살펴보는 모습./연합뉴스

―암호화폐는 법정화폐보다 어떤 강점이 있나?

“예컨대 비트코인은 2009년 1월에 첫 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거래가 중단된 적이 없다 비트코인의 비밀 키(key)를 보관하고 있는 거래소가 해킹을 당해 비트코인이 도난된 적은 있지만 비트코인 시스템 자체가 해킹된 적은 없다. 위조화폐가 나온 적도 없다. 그래서 시스템이 법정화폐보다 안정됐다고 볼 수 있다. 암호화폐는 누군가 돈벌기 위한 투기 수단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드러낸 금융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암호화폐의 약점

―현재 암호화폐 시스템에 문제는 없나?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문제가 된다. 현재 암호화폐 시스템은 한 거래와 다음 거래를 확정하는 데 10초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양자컴퓨터가 나와서 계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면 이 거래 확정 시간 동안에 이전의 모든 거래들을 새로 기록할 수 있다. 디지털 화폐의 생명인 희소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위조가 불가능한 암호화폐의 가장 큰 특징은 없어지고, 암호화폐의 생명력도 끝난다.”

양자컴퓨터는 연산 속도가 워낙 빨라서 암호화폐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최고경영자(CEO)가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앞에 서 있다./조선일보 DB

―현재 중앙은행 시스템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비트코인이 2017년에 폭등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중앙은행의 돈풀기 정책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제로금리 상황이어서 금리는 더 이상 정책 수단이 안된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로 국가의 재정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 이런 시스템의 신뢰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러나 2017년 상황을 돌이켜 보면 중앙은행 중심의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대안으로 뜨겁게 각광 받던 비트코인도 그해 가격이 폭락하지 않았나?

“초기에 비트코인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현실에 접목하는데 상당한 애로 요인이 발생했고 생각보다 거래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화폐 채굴 비용도 많이 들었다. 이러한 실망 때문에 광풍이 꺼졌다. 전세계적인 규제도 한몫 했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시스템들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각국이 모여 글로벌 기준들을 만들어 적용하지만 각 국에 적용될 때에는 또 각국 사정에 맞지 않아 부작용이 생긴다. 이렇게 보면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국가 체제는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금융이 확산돼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효율성이 극도로 높아지면 궁극적으로 어떤 정치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고 보나?

“영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세계 정부가 탄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온갖 우주인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우주평의회 형식의 정부 말이다. 우주평의회와 같은 초연결 환경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이 중요해질수록 탈중앙(국가)거래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화폐가 필요해진다. 이 기능의 상당 부분을 암호화폐가 담당하게 된다.”

미국 NBC 방송이 1966년부터 시리즈로 방영한 영화 '스타트렉'의 한 장면. 23세기 미국 우주비행선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의 우주 비행에 관한 이야기이다./스타트렉

앞서가는 싱가포르

―한국의 암호화폐 산업 동향은?

“외국에서는 민간 부분에서 암호화폐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디지털 통화 시장을 놓고 중앙은행과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의 민간업체가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기관 투자자들도 예컨대 비트코인을 투자포트폴리오에 편입하고 있다. 실제 화폐 영역을 넘어서 지급-결제-청산 전반에 걸친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관련 시장 인프라와 규제 체계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단지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서 포괄적인 규제 체계를 갖추고 시장 인식도 변화해야 한다. 한마디로 판이 바뀌는 상황에서 기존 선두주자들일수록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두드러진 참여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블록체인 재단이나 전문적인 암호자산 투자자 외에 해외처럼 투자은행이나 벤처캐피털이 이 분야에 참여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또 국내에는 아직 제대로 된 암호화폐 커스터디언(수탁) 기능도, 스마트폰 속의 암호화폐 지갑 앱도 제대로 개발되어 있지 않다.

어차피 커질 산업이라면 일찍 대응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싱가포르는 우리보다 5년이나 앞서 있다. 시장 개방이 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소규모 경제라서 그런지 전략적 선택이 돋보인다.”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의 개량형인 디엠의 로고.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 지난 2019년 10월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장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EPA 연합뉴스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국내에 충분히 마련되어 있나?

“은행에서 자기 확인을 하지 않고는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 없다. 거래소는 거래를 감독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암호화폐가 던지는 과제

인터뷰를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다. 최 위원은 오랫 동안의 금융 연구 경륜에 암호화폐에 대한 신지식을 접합시켜 암호화폐와 금융 시스템, 중앙은행과 국가의 미래 모습을 그려줬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최근 암호 화폐가 폭등한 이유와 향후 우리의 대응책을 요약하면?

“금융은 신뢰 기반으로 작동하는데 새로운 환경에 걸맞는 신뢰 기반이 아직 만들어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신뢰 기반을 지키기 위한 각국 정부의 조치나 노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민간 부문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필요성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암호 자산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암호화폐 같은 암호자산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인터넷 환경에서 새로운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포괄적 담보 기능이다. 디지털 시대의 가치 창출은 독자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다양한 요소들과 연결되어야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다. 장벽이 있고 중앙에서 관리하는 화폐 기반으로는 이러한 세계에 접근하기 어렵다. 그전에는 달러와 금이 희귀성이 있어서 안전자산으로서 담보 기능을 제공했는데 달러의 경우 너무 많이 발행돼 안전 자산으로 쓰기 어려워졌다.

엄밀히 말해 암호화폐는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아이템이다. 그리고 이러한 암호화폐 생태계가 유지되고 번성하려면 다양한 유무형의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탈중앙화 기반을 유지하려면 암호화폐 거래소, 혹은 이 거래소가 스마트폰 속에 구현된 암호화폐 지갑 앱 같은 핵심 기능도 도입되어야 하는데 아직 초기단계이다. 분명 지금의 변화는 두고두고 미래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이 잘 활용해야 한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이 지난 21일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으로 각종 암호화폐의 가격 추이를 보여주며 암호화폐의 최근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기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