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회사원 김모씨는 요즘 가상 화폐 투자에 몰두하면서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에선 눈치를 보며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가상 화폐를 사고팔고, 퇴근하면 24시간 돌아가는 거래소의 가격을 살핀다. 한밤중에 깨어나 스마트폰을 잡는 날이 많다. 지난달 중순 3000만원을 처음 투자했다가 지난 7일 정부 규제 발표로 가격이 폭락했을 때 1000만원을 잃은 뒤로 원금을 복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김씨는 “어제도 회사 근무시간 중 거래해 120만원을 벌었다. 하루에 20번은 넘게 사고팔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직원 강모씨(36)는 “대출을 아무리 끌어모으고 맞벌이를 해도 이번 생에 집 사기는 틀린 것 같다”면서 “가상 화폐 투자가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그것 말고 다른 수가 없어 보여서, 조금이라도 숨통을 틔워 보려고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 화폐 광풍에 휩쓸려 일상이 깨져버린 ‘코린이(코인 투자+어린이)’가 늘어나고 있다. 가상 화폐 시장은 가격 제한 폭이 없고 365일 24시간 돌아간다. 기업마다 수십억, 수백억원을 벌어 퇴사한다는 직원들 풍문이 돌면서 광풍은 더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광풍이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 구로구의 한 정신과 전문의는 “최근 들어 하루 두세 명은 가상 화폐 투자 때문에 찾아온다”면서 “주로 2030세대인데 불면증은 기본이고 코인 가격 등락에 따라 조울증에 가까운 감정 변화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올 들어 20대 투자금 증가율 201%
2030세대 가상 화폐 투자자가 급증하는 모습이다. 빗썸, 업비트, 코빗, 코인원 등 국내 4대 가상 화폐 거래소의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투자 예탁금이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2030세대의 투자금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작년 말 대비 2월 말 투자 예탁금 증가율을 보면 20대가 2277억원에서 6864억원으로 201%나 된다. 30대가 5524억원에서 1조5710억원으로 둘째(184%)로 높았다.
젊은 투자자들이 가상 화폐 시장을 주도하면서 하루에도 사고팔기를 반복하는 단타 투자가 성행하고 있다. 온라인 카페에는 ‘가상 화폐로 20배 수익을 내는 단타 투자법’ 등 자극적 제목을 내건 게시 글이 수백 건씩 올라 있다.
1분기(1~3월) 4대 거래소의 투자자 1인당 월평균 거래 횟수는 126회로 집계됐다. 휴일을 가리지 않고 하루 4차례 이상 가상 화폐를 사고팔았다는 뜻이다. 한 대형 증권사의 주식 투자자 1인당 월평균 거래 횟수 26회와 비교해 보면 주식 거래에 비해 가상 화폐의 단타 성향이 크게 높음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투자 지식도 없이 대박 사례에만 현혹돼 투자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한 가상 화폐 거래소 직원은 “최근 투자자가 ‘1만KRW’이 얼마냐고 전화 문의를 해서 황당한 적이 있다. ‘KRW’은 ‘코리안원’으로 ‘1만원’과 같은 뜻인데 모르고 있더라”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2030세대가 아예 아무 것도 안 하거나,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는 이판사판 선택을 하고 있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을 올려놓은 정부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가상 화폐 투자 계좌 매일 7만개 늘어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금, 6개월 미만 정기 예금 등 단시간 내 현금화 가능한 단기 부동 자금은 지난 2월 말 1453조원으로 1년 전보다 264조원(22%) 늘었다.
코로나 지원을 명목으로 풀린 돈들이 가상 화폐로 흘러가는 정황도 보인다. 지난 16일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예금 잔액(133조1442억원)은 3월 말보다 17조5787억원 줄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형 공모주도 없었는데 예금이 줄었다”며 “가상 화폐 열풍 때문인 듯하다”고 말했다. 반면 가상 화폐 투자를 위한 은행 계좌는 매일 7만여 개씩 새로 개통되고 있다.
저금리와 부동산 급등으로 투자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종잣돈이 적은 2030세대가 가상 화폐 투자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상 화폐가 주식이나 부동산보다 가격 불안정성이 커서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작은 충격에도 가격 하락과 투자자 손실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