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與野)가 국회에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도입에 합의하면서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소위원회는 지난 1일 디폴트옵션 도입을 골자로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했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별도의 의사 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투자금을 미리 정해져있는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하는 제도다. 디폴트옵션에서 허용하는 상품에는 TDF·인프라펀드 등 상품군 5개가 포함된다. 지금은 가입자의 의사 표시가 없으면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투자한다. 이러다 보니 퇴직연금의 최근 5년간 수익률이 연평균 1.85%에 불과할 정도로 낮아 노후 대비 목적이라는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TDF는 특정 목표 시점(타깃 데이트·Target Date)을 투자자의 은퇴 시점으로 지정하면 남은 기간 국내외 주식과 채권의 편입 비율을 알아서 조정해 투자하는 펀드 상품이다. 젊을 때에는 주식 등 위험 자산 비율을 높여 수익률 극대화를 추구하다가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전 자산 비율을 높여 위험을 낮추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규모 커지는 TDF
TDF 시장은 최근 주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8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일까지 퇴직연금 펀드 설정액이 6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펀드 증가 규모(3조7313억원)보다 컸다. 특히 TDF 설정액이 3조3000억원 늘어 전체 퇴직연금 증가분의 55%를 차지했다. 은행 금리 수익만으로는 퇴직 이후 삶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TDF에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제도에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자연스럽게 퇴직 이후 쓸 돈 마련에 초점을 맞춘 TDF 시장의 유의미한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TDF가 노후 자금 투자에 특화돼 있어 디폴트옵션의 최대 수혜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뱅가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말 미국 DC형 가입자 중 TDF 보유 비율은 78%에 달했다.
TDF 상품 중에서는 연초 후 수익률 기준으로 ‘KB온국민TDF2055증권자’가 17.5%로 가장 높았다. ‘삼성한국형TDF2050증권’(17%)·'한화LifePlusTDF2050증권’(14.3%)·'NH-Amundi하나로TDF2045증권’(14.2%) 등이 뒤를 이었다.
TDF 끝에 붙는 연도는 목표 은퇴 시점을 의미한다. 변재일 한화자산운용 WM솔루션운용팀장은 “1980년생이 60세에 은퇴할 예정이라면, 1980과 60을 더한 값(2040)이 들어간 TDF2040을 선택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 등 상품 보완책 필요
TDF 시장을 보다 활성화하려면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제대로 운용되는지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디폴트옵션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적격 TDF’는 운용 기간 내내 주식 비율이 80%를 초과하지 않고, 목표 시점 이후 주식 비율이 40%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 규제 때문에 주가가 오르면 주식 비율을 낮추려고 유망한 주식을 강제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김병덕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나라엔 없는 위험 자산 투자 한도 같은 규제가 우리나라에 있다”며 “지나치게 위험 회피적인 자세로는 퇴직연금의 저수익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간 단위에서 자체적인 ‘글라이드패스(Glide Path)’ 모형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글라이드패스는 연령별 위험·안전 자산 비율을 조절해주는 자산 배분 곡선을 말한다. 현재 국내 대다수 자산운용사는 외국계 기관의 글라이드패스를 빌려 TDF를 굴리고 있다. 그러나 외국 기관의 모형은 모두 외국인들의 생애·소득 주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국내 투자자들의 사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TDF가 글라이드패스에 따라 제대로 운용되는지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수익률이나 위험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외부 평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TDF(타깃 데이트 펀드)
목표 시점(타깃 데이트·Target Date)을 투자자의 은퇴 시점으로 지정할 경우 남은 기간에 국내외 주식과 채권의 편입 비율을 알아서 조정해 투자하는 펀드 상품. 은퇴 시점까지 기간이 많이 남아있으면 주식 등 위험 자산 비율을 높이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전 자산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