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을 점령한 ‘동학개미’나 미국 등 해외 주식 시장을 활보하는 ‘서학개미’에 이어 이제는 ‘선학(先學)개미’가 움직이고 있다. 잠재력 있는 기업의 가치를 남들보다 먼저 알아보고 상장 이전에 사두려는 비상장 주식 투자자들인데, 2030세대가 주류다.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비상장 주식 투자 플랫폼 K-OTC의 거래액은 2014년 2200억원에 그쳤지만, 올 들어서는 11월 말까지 1조3187억원에 달해 6배로 급증했다. 지난해 기록한 역대 최고 규모(1조2766억원)를 넘어섰다. 국내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비상장 주식 투자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 회원 수는 출범 2년 만에 80만명을 넘겼다. DB금융투자는 “금융사 등도 뛰어들고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비상장 주식 투자가 더 늘어날 것이고, 선학개미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선학개미 주류는 MZ세대
선학개미의 주류는 작년부터 적극적인 개인 투자자로 나선 MZ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들이다. 지난 10월 기준 최근 1년간 ‘증권플러스 비상장’ 플랫폼 이용자의 43.8%를 MZ세대가 차지했다. 또 다른 비상장 주식 투자 플랫폼인 ‘서울거래 비상장’의 경우 한 달 내 로그인 등을 한 ‘월간활성이용자(MAU)’ 30만명 가운데 MZ세대는 40%(12만명)에 달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대어급 공모주들의 IPO(기업공개)는 주식 투자자들이 비상장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역대 공모액 상위 10개사 중 5개(크래프톤·카카오뱅크·SK IET·카카오페이·SK바이오사이언스)가 올해 신규 상장한 기업들이다.
경쟁률이 높은 공모주 투자는 원하는 만큼 주식을 배정 받을 수 없어 큰 수익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상장을 앞둔 비상장 주식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현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마켓컬리의 운용사 컬리, 차량 공유 업체 쏘카, 신세계그룹 통합온라인몰 SSG닷컴, 야놀자 등이 장외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 중이다.
◇증권사 계좌 트면 일반 주식처럼 거래 가능
비상장 주식 거래는 어렵지 않다. 증권사 계좌를 만들어 투자하면 된다. K-OTC의 경우 34개 증권사에서 거래 계좌를 틀 수 있다. 다만, K-OTC는 매출 등 실적 요건을 갖춘 기업만 등록할 수 있는 데다 공시 의무 등 진입 장벽이 높아 거래 가능 종목 수는 146개에 그친다.
‘증권플러스 비상장’은 삼성증권 계좌를 이용한다. 기술기업 피에스엑스(PSX)가 운영하는 ‘서울거래 비상장’은 신한금융투자와 계좌가 연계돼 있다. 금융위원회는 증권플러스 비상장, 서울거래 비상장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해 금융투자업 인가를 안 받아도 비상장 주식 거래 업무가 가능하게 특례를 줬다.
‘38커뮤니케이션’, ‘피스탁’ 등은 홈페이지에 올려진 종목과 전화번호를 보고 매수자와 매도자 직거래가 이뤄진다. 지난 11월에는 인터넷전문은행 토스뱅크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미국 비상장 주식 투자 플랫폼 지분을 1%(약 60억원) 인수하며 사업 제휴를 모색 중이다. KB·NH투자 증권도 새 플랫폼 출시를 준비 중이다.
◇비상장 주식이라 사전 공부 필수
상장사와 달리 비상장사 정보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다트)에 공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 때문에 투자 전에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증권사·기업신용평가사의 보고서, 언론 기사 등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김세영 서울거래 비상장 대표는 “믿을 만한 벤처캐피털의 투자 여부를 확인하고, 기업의 호재성 발표를 주변 전문가에게 검증받고, 유사한 상장사와 기업가치를 비교하며, 여윳돈으로 분산 투자하되, 첫 투자는 소액으로 할 것 등 ‘비상장 투자 5대 원칙’을 지키라”고 권유했다. 비상장 가격보다 상장 후 가격이 더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8월 상장 직전 장외 시장에서 9만원대까지 거래됐지만 현재 6만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비상장 주식은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작은 변수에도 주가가 크게 출렁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