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미국 주식을 아시아 낮 시간에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 7일부터 한국에서 삼성증권을 통해 시행된다. 해당 시스템을 개발, 운영하는 미국 핀테크사 블루오션의 랄프 레이먼 회장이 5일 서울 서초동 삼성증권 본사에서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하는 모습. /오종찬 기자

“오늘부터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들은 충혈된 눈을 비벼가며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애플·아마존 등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식을 한국 낮 시간에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가 7일 국내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핀테크 업체 ‘블루오션’이 개발한 미국 주식 시간 외 거래 시스템이 한국의 독점 제휴 증권사인 삼성증권을 통해 시행된다. 미국 주식 거래를 미국 외 다른 나라의 현지 시간대에 맞춰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미국 주식 거래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미국 시각 오전 4시~오후 5시)까지 가능했다. 특히 미국 주식 거래의 절반이 밤 11시 30분~오전 2시 30분에 집중됐다. 미국 주식을 사고팔려면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블루오션의 랠프 레이먼(Layman) 회장은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삼성증권 본사에서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어 홍콩·일본·인도 등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을 제쳐 두고 첫 번째 파트너로 택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과거보다 훨씬 부유해지고 전문화됐다”면서 “이런 한국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투자 목록)를 다양화하고 다른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세계 최초로 미국 주식을 아시아 낮 시간에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 블루오션의 랠프 레이먼 회장은 지난 5일 인터뷰에서 “한국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어 홍콩·일본 등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을 제쳐 두고 첫 번째 파트너로 택했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의 미국 주식 투자 규모는 2015년 19억달러(약 2조3000억원)에서 작년 말 678억달러(약 82조원)로 늘어 36배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해외 주식 투자액 증가 폭(13배)의 3배에 달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다. 총 해외 주식 투자에서 미국 주식의 비율도 31%에서 87%로 급등했다.

레이먼 회장은 글로벌 자산운용사 템플턴의 펀드매니저와 세계 최대 항공기 엔진 제조사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자산운용 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한 35년 경력 투자 전문가다. 그는 2019년 블루오션을 창업했다. 블루오션의 자회사인 블루오션 대체거래소(ATS)는 작년 10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미국 시각 기준으로 야간거래(overnight session)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체 거래소로 승인받았다. 대체 거래소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등 정규 거래소와 달리 상장·규제 업무 등은 하지 않고 오직 주식 거래 중개만 하는 거래소를 말한다.

그는 미국 주식을 야간이 아니라 주간에 거래함으로써 서학개미들이 뉴스에 빠르게 대처하고 이를 통해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미국 거래소가 장 마감을 한 뒤 미국 기업의 실적 발표가 나오면 한국 투자자들은 다음 날 미국 거래소 개장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낮에 바로 해당 주식을 매매할 수 있습니다. 투자 전 홍콩·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주가 움직임을 참고할 수도 있게 됐죠.”

또 한국·미국 주식을 동시에 매매하는 전략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 주식이 많이 올랐다면 이를 팔고 상대적으로 덜 오른 한국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를 바로 매수해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블루오션 대체 거래소에서는 나스닥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 등 월스트리트 평균 경력이 15년인 베테랑 직원 25명이 시스템 개발·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레이먼 회장은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등도 사용하는 미국 뉴저지의 데이터센터에 정보들이 저장돼 있기 때문에 시스템 보안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서학개미 총 계좌 수는 390만개(작년 10월 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삼성증권을 통해 거래하는 계좌가 50만개 정도다. 미국 주식 주간 거래 서비스가 한국에서 시작되면 해외 계좌 수가 빠르게 늘어 한국이 주요한 미국 시간 외 거래 시장이 될 것으로 레이먼 회장은 기대했다. 삼성증권과의 1년간 독점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증권사들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올해 안에 홍콩·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어떻게 거래하나]

다우·나스닥 등 8000여 종목, 직전 체결가의 상하 15%까지… 삼성증권 통해 낮에 주문 가능

7일부터 삼성증권을 통해 주간 미국 주식 매매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가능해진다. 기존 야간 거래 13시간(오후 6시~ 다음 날 오전 7시) 외에 7시간 30분 거래 시간이 늘어난다. 다우평균, 나스닥 등 주요 지수에 포함된 종목뿐만이 아니라 8000여 개에 달하는 모든 미국 증시 상장 주식을 매매할 수 있다. 가격 제한 폭은 없지만, 매매 주문은 직전 체결 가격 기준 상하 15% 이내에서만 가능하다. 수수료는 종전(0.25%)과 같고, 주간거래에서 산 주식을 미국 정규장 등 다른 거래에서 팔 수 있다. 시초가는 미국 증시 종가이고, 주식 물량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글로벌 회사들이 참여해 거래를 활성화시킬 예정이다. 삼성증권은 “주식 물량을 공급하는 회사들도 거래가 체결돼야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복수의 공급 회사들이 참여하므로 터무니없는 가격이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