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주식시장(K-OTC) 자동차 내외장재 제조사 두올물산 모회사에 공매도(空賣渡)를 했던 외국 투자자들이 2000억원 가까운 손실을 볼 상황에 처했다.
공매도는 주식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투자자가 그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실제 주가가 떨어지면 되사서 갚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 기법을 말한다. 두올물산 모회사 주가가 떨어질 줄 알고 빌려다 판 투자자들이 주가가 예상과 달리 대폭 오르는 바람에 되사서 갚게 되면 큰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작년 9월 K-OTC에 등록된 두올물산 주가는 5개월 만에 490배나 올랐다. 상장할 때 시가총액은 500억원이었는데 현재는 약 26조원으로 급증했다. 코스피 시총 기준으로 따지면 13위다. 포스코·카카오뱅크보다 순위가 높다.
◇투자자는 대부분 외국계 기관
K-OTC을 운영하는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을 빌린 것은 대부분 외국계 기관들이다. 키움증권·신한금융투자 등 국내 증권사들이 기존 국내 주주들에게 주식을 모집해서 외국계 기관들에게 15억원 어치를 빌려줬다.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기관 사이에 외국계 증권사들이 중개를 섰다.
주가가 500배 올랐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은 차익 실현을 위해 외국계 기관들에게 빌려준 주식을 갚으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외국계 기관들로서는 2000억원 가까운 손실을 보게 되는 셈이다.
주식을 빌려준 대여자로부터 상환 요청이 들어오면 주식 차입자는 최장 3거래일 안에 갚아야 한다. 두올물산 주가가 급락할 때까지 기다렸다 주식을 되사서 갚을 수 없다는 얘기다. 금투협은 “증권사와 외국계 기관들 간 대차거래 표준 약정에 의해 상환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대형 증권사들은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이상 급등 조사 착수
두올물산은 작년 11월 그룹 관계사(오큐피바이오)로부터 바이오 관련 지식재산권(IP)을 받아 바이오 사업에 진출했다. 미국 FDA(식품의약국)에서 난소암 치료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라 일각에서는 주가 상승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본다. K-OTC 매매가 시작된 작년 9월13일 535원이던 주가는 작년 말 9만원대로, 17일에는 26만150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 재료가 주가를 500배 가까이 올릴 정도의 호재로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 증권업계 의견이다. 주가가 개별 호재나 수급으로 몇배씩 급등하는 경우는 있지만 시총 500억원의 소형주가 몇달 만에 26조원으로 커진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가 조작 작전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금융감독원은 주가 이상 급등을 이유로 조사에 나섰다. 16일 금융투자협회는 두올물산에 주가 급등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고, 투자자들에게 투자유의를 통보했다. 매매거래 정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거래를 정지하지는 않았다.
◇기존 주주, 주식 상환 요구할 환경 마련돼
두올물산은 코스닥 상장사이자 두올물산 모회사 디아크(옛 OQP)가 거래정지 요건을 피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작년 3월 디아크는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고 거래가 정지됐다. 당시 감사를 진행한 다산회계법인은 디아크가 캐나다 제약사 온코퀘스트로부터 바이오 관련 IP를 3752억원에 구입한 것과 관련해 “무형자산 금액의 적정성 및 현물출자에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외국인 기관들이 두올물산 디아크를 집중 공매도한 것도 주식 거래가 정지된 작년 3월 이전 무렵으로 보인다.
작년 5월 디아크는 1:1:1 인적분할을 활용해 3개 회사로 쪼개졌다. 인적분할은 기존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의 기업분할이다. 주주 구성은 변하지 않고 회사만 수평적으로 나눠지는 방식이다. 3개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된 디아크와 비상장사인 두올물산홀딩스·오큐피바이오였다.
회사가 쪼개지기 전에 주식을 가졌던 주주들은 인적분할 후 디아크·두올물산홀딩스·오큐피바이오 주식들을 보유하게 됐다. 모두 거래가 정지됐거나 비상장주식들이라 내다팔 수 없었다.
이후 경영진은 모회사 두올물산홀딩스를 자회사 두올물산이 역(逆)합병하는 방안을 결정했다. 그리고 금감원은 지난 10일 두올물산홀딩스·두올물산의 합병을 승인했다. 합병 후 주주들은 두올물산홀딩스 주식 대신 K-OTC에 등록된 두올물산 주식을 갖게 된다. 값이 오른 주식을 내다팔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금감원의 합병 승인 후 두올물산 주가는 단시간에 또 다시 급등했다. 최근 6거래일(10~17일) 동안 9만8700원에서 26만1500원으로 165%나 튄 것이다. 금감원은 합병 기업간 문제가 없는지, 합병 신고서 형식과 기재 항목이 맞는지 등만 심사할 뿐 합병 자체는 규제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합병은 오는 18일 이뤄진다. 합병 기업의 주식이 언제 주주들에게 교부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주식이 교부되면 공매도 대여자(기존 주주)들은 차입자들에게 주식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