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삼성전자 주가가 내려갈 때마다 몇 주씩 사모으던 주부 정모(43·경기도 일산)씨는 얼마 전부터 물타기(주가가 떨어질 때 사들여 평균 매입가격을 낮추는 투자법)를 관뒀다. 아무리 물을 타도 주가가 반등할 기미는 없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느낌이 들던 차에, 예금 금리가 확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씨는 “최근 친구들 사이에선 연 5%짜리 특판 적금을 들러 간다고 난리”라며 “차라리 은행에 돈 맡기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회사원 김모씨도 최근 연 3%짜리 정기예금에 가입했다. 증권 앱은 지웠다. 그는 “보유 종목들이 전부 시퍼렇게 떨어지는 꼴이 보기 싫어서 당분간 증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한국은행의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8년 만에 기준금리 2% 시대가 도래하면서, 증시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증시 거래 대금이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으로 줄어들고, 개인 투자자 비중도 기록적으로 낮아졌다. 증시에서 빠진 자금이 은행권으로 몰려가는 ‘역(逆) 머니무브’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증시에 파리 날리네… 삼성전자 거래 대금 30% 뚝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3일까지 코스피 시장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7조2408억원으로 2020년 1월(6조4347억원) 이후 가장 적은 수준으로 감소했다. 한은의 빅스텝 결정 이튿날인 14일엔 코스피 거래 대금이 6조4439억원까지 줄었다. 총 거래 대금에서 개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48.2%로 2019년 12월(45.8%) 이후 가장 낮아졌다.
코스피가 처음으로 3000을 돌파한 작년 1월에는 코스피 시장 일평균 거래 대금이 26조4778억원까지 치솟았고, 이 중에서 개인 투자자 거래 대금이 17조2994억원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달 들어 개인 투자자 거래 대금은 3조4905억원으로 지난해 1월의 5분의 1 수준이 됐다.
시가총액 1위 종목으로 개미들이 가장 열성적으로 사고파는 삼성전자는 지난달 하루 평균 1조3000억원어치가 거래됐지만, 이달 들어선 거래 대금이 30% 줄어든 92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주가 상승기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을 한 다음 재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 들어 증시 약세가 이어지면서 발이 묶인 자금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가장 많이 투자(15조1674억원)한 삼성전자의 경우 개인 투자자들이 평균 6만7700원에 샀는데, 주가는 14일 5만7500원까지 하락했다.
증시를 떠난 자금은 은행권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한 달간 증권사 MMF(머니마켓펀드)에서 8조1000억원이 줄어든 반면, 정기예금과 요구불예금은 각각 21조원과 7조4000억원 늘었다. 한은 금융통계팀 정진우 차장은 “시중 자금이 위험 자산에서 이탈해 정기 예·적금으로 몰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빅스텝’에 부담스러워진 ‘빚투’
높아진 금리 부담에 빚투(빚내서 투자)도 감소하고 있다. 증시가 한참 뜨겁던 작년 8월 말 약 25조원에 달하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이달 13일 기준 17조8000억원 수준까지 감소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 기간 61~90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은 DB금융투자(9.3%), 신한금융투자(9.2%), 유안타증권(9.1%), 키움증권(9%) 등이 9% 이상이다. KB증권도 이달 들어 8.5%에서 8.8% 이자율을 인상했고, 오는 이달 말에는 한국투자증권이 8.75%에서 9%로 올릴 예정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올랐지만 당장은 증권사들이 자신들의 수익에 해당하는 ‘가산금리’를 낮춰서 이자율을 인상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거래가 위축되면서 증권사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증권사들이 금리를 올리게 되면서 신용융자 이자율이 10%를 넘어가는 곳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