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민연금이 역대 최악 성적표(잠정 수익률 -8.22%)를 기록한 가운데, 사적(私的) 연금인 연금저축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더는 노후를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불안감 속에 개인연금에 기대보려는 국민들이 해마다 8~9조원씩 돈을 맡기고 있지만,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깨지는 의외의 시장 상황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적·사적 연금, 믿을 곳 하나 없네

27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공시된 금융사 87곳의 지난해 연금저축 평균 수익률은 -1.5%를 기록했다. 회사별 연금액을 가중평균해 구한 수치로, 단순평균 수익률은 -9.2%로 더 떨어진다.

의무 가입해야 하는 국민연금이 ‘은퇴 빌딩’의 1층이라면 퇴직연금이 2층, 연금저축 등 개인연금이 3층으로 구분된다. 앞으로 더 내고 덜 받게 되는 국민연금에만 미래를 맡길 수 없으니 개인연금을 통해 적극적으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목소리였다. 2021년 말 기준 연금저축에 맡긴 돈은 160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지난해 수익률을 보면 개인연금조차 믿을 구석이 못 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업권별로는 손해보험사(10곳 평균 2%), 생명보험사(17곳 평균 2.2%)에 맡긴 연금저축이 가까스로 플러스 수익률을 냈지만, 물가 상승률(5.1%)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던 셈이다.

은행 16곳에 적립돼 있는 연금저축 수익률은 평균 -0.3%에 그쳤다. 문제는 자산운용사들이다. 국내 자산운용사 44곳 중 연금저축펀드 수익률이 본전 이상인 곳은 단 4곳뿐이었다. 평균 수익률은 -25.9%로 처참했다. 원금을 절반이나 까먹은 곳(다올자산운용 -50.4%)도 있었다. 한 자산운용사 연금저축펀드 담당 팀장은 “지난해 국내외 주식이 20% 이상 하락한 것은 물론, 급격한 금리 인상 여파로 비교적 안전 자산이었던 국내외 채권마저 10%대 하락률을 기록했다”며 “어느 기관도 좋은 수익률을 내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작년 시장을 탓하는 변명이 무색하게 장기 수익률도 시원찮았다. 금감원이 공시한 금융사별 연금저축 10년 장기 수익률을 보면 피델리티자산운용(연평균 9.5%)을 제외하면 50곳이 수익률 1~3%대, 14곳이 0%대, 21곳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 은퇴를 계획 중인 회사원 최모(50)씨는 “시장이 위험할 때나 위험하지 않을 때나, 공적 연금이거나 사적 연금이거나 노후 자금을 믿고 맡길 데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세액공제 한도도 늘었는데

장기 수익률에서 보듯 금융회사별 연금저축 운용 실적이 ‘하향 평준화’되다 보니, 소비자들은 이벤트나 경품을 보고 마지못해 금융사를 고르는 실정이다. 금감원이 회사별 수익률을 비교해 보고 선택하라고 연금포털 사이트를 열었지만, 큰 도움은 못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이 매년 4월 초 전년도 연금저축 실적을 취합할 때는 1994년부터 판매한 구(舊) 개인연금 저축 적립액 실적까지 누적해 계산·발표한다. 과거 고금리 시대에 예금 위주로 투자했던 연금저축 수익률은 지금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분기마다 회사별·상품별 실적을 공시하는 연금포털에는 2013년부터 판매한 새로운 연금저축 계좌만 집계해 발표한다. 실제 소비자들이 가진 계좌 수익률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는 연금저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연금 계좌에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한도가 기존 연 7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확대된다. 연금저축에 600만원, IRP까지 합산해 900만원을 넣은 총급여 5500만원 이하 사회 초년병이라면 연간 최대 148만5000원을 절세(세액공제 16.5%)할 수 있다. 더 많은 돈을 넣도록 유도하는 만큼, 각 금융사도 수익률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남우 연세대 교수는 “장기 가입 상품인 연금 수익률을 1년 단위로 좋다 나쁘다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연금저축 상품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장기 수익률을 내도록 차별화하는 노력은 필요하다”면서 “국내에서 이런 상품을 찾기 어렵다면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