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보잘것없던 제 계좌에 한 줄기 빛이었는데, 이제 믿을 놈 하나 없네요.”

트럼프가 쏘아 올린 관세 전쟁과 그로 인한 미국 경제 침체 우려 등이 미국 주식 시장에 암운을 드리우면서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해외 주식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서학 개미(미국 등 해외 주식 투자자)들은 작년 내내 보통의 동학 개미(국내 주식 투자자)들보다 높은 수익을 자랑했다. 테슬라·엔비디아·팰런티어 등 급성장하는 테크주를 골라 몰빵한 덕분이다. 그러나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그간 급성장한 테크주가 가장 빠르게 무너졌고, 그간의 과실도 금세 빛이 바래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S&P500 구성 500종목 중 366종목(73%)이 이미 52주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했다.

그래픽=백형선

◇천당에서 지옥으로, 서학 개미 수익률 급락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 상장된 1000여 개 ETF(상장지수펀드) 중 지난해 수익률 상위를 휩쓸었던 미국 투자 ETF들이 올해는 죽을 쑤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종목이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서학개미 ETF’다. 이 종목은 작년 수익률이 98.7%로 레버리지 ETF를 제외하면 전체 수익률 1위였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11일까지 수익률이 -25%로 최하위권으로 처졌다. 이 ETF는 서학 개미가 많이 사들인 종목들을 그대로 따라 투자해 인기를 끌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집계하는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보관 금액 상위 25개 기업을 그대로 편입하는 그야말로 ‘서학 개미 따라 하기’ 전략이다. 주부 임모(45)씨는 “이 종목 저 종목 따져보기도 귀찮아 남들 많이 산다는 미국 주식만 모아 놓은 ETF를 샀다”며 “한동안 수익률이 좋았는데, 이제는 하락세가 빨라 눈곱만 한 수익이라도 남아 있을 때 얼른 팔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주가가 1만큼 움직이면 2배 또는 3배의 수익이 나도록 설계된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한 이들의 시름은 더 깊다. 최근 주가 하향세보다 더 크게 손실이 나기 때문이다. 미국 대표 빅테크 기업들을 묶어 이들 주가 움직임의 2배만큼 가격이 변하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빅테크TOP7PLUS레버리지(합성)’ ETF는 지난해 수익률이 197%로 전체 ETF 중 1위였다. 그러나 올 들어선 수익률이 -30%를 하회할 정도로 고꾸라졌다.

◇“미국에서 유럽·중국으로 눈 돌려야”

전문가들도 미국 주식 시장을 다시 들여다보는 데 분주하다. 11일 시티그룹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대신 중국에 대한 견해를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높였다.

시티그룹의 디르크 윌러 전략가는 “앞으로 몇 달 동안 미국 경제에서 나오는 뉴스 흐름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고, 단기적으로는 미국 예외주의가 다시 강하게 부각될 가능성이 작다”며 미국에 대한 투자 의견을 낮춘 배경을 설명했다. 윌러는 “큰 그림에서 보면 AI(인공지능)가 주도하는 미국 증시의 초과 성과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장기적인 이야기로 향후 몇 달간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모건스탠리도 미국 테크주에 대한 재진입은 경계하는 편이 좋다는 의견을 냈다. 이 은행은 지난 10일 주간 리포트에서 “지금은 매수 기회”라고 보면서도 “기존 주도주가 아닌 새로운 종목들을 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엔비디아·테슬라 등 미국 테크주를 대표하는 M7(매그니피선트7)을 중심으로 한 기술주에 다시 들어가기보다는 금융주와 미국 내 제조업 관련주 등을 노리라는 것이다. 또 EU(유럽연합)의 재정 개혁과 중국의 경기 부양책 가능성 등을 볼 때 미국 아닌 유럽·중국 등의 주식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고도 이 은행은 덧붙였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 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가 최근 미국 S&P500 종목과 유로스톡스 600 종목들의 주당 순이익 추이를 비교한 결과, 1월 중순부터 S&P 500의 올해 수익 성장 추정치는 하향 조정되는 반면, 유럽의 수익 추정치는 상향 조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