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지금 유럽, 중국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 관세 인상에도 타격이 거의 없어요. 공매도가 재개되면 소외됐던 한국으로도 외국인 자금이 들어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관세전쟁의 포문을 열면서 글로벌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전 세계 자금 흐름을 들여다보는 구용덕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부문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를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구 대표는 미래에셋운용 대표 펀드인 인디펜던스, 디스커버리펀드 등을 운용하며 국내 펀드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2021년부터 주식운용 대표를 맡고 있다.
-뉴욕 증시가 꽤 하락했다.
“S&P500 지수를 보면 역사적으로도 매년 평균 고점 대비 10% 정도의 하락은 있었다. 이 정도 하락 폭으로는 미국 경제가 완전히 침체로 간다, 아니다를 말할 수준은 아니다. 관세가 실제 미국 기업들에 얼마나 영향을 줄 건지 아직 불분명하다. 2분기 이후 실적 전망이 나오기 전까지는 시장 변동성이 더 있을 것이다. ‘이만큼 빠졌으니 당장 사야 된다’보다는, 2분기 실적 전망을 보고 들어가는 게 낫다.”
-유럽, 중국 주가가 많이 오르고 있는데.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상황이 좋다. 방산과 인프라 투자를 위해 공격적인 재정 정책을 내놓은 덕분이다. 중국으로도 자금이 몰린다. 중국은 그간 공동부유(共同富裕·다 같이 잘살자)를 내세우며 기술 기업을 규제해 왔는데, 최근 ‘선부(先富·능력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자가 되자) 후 공동부유’로 기업 친화적 제스처가 보인다. 결정적인 건 미국이 관세를 올려도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BYD 같은 중국 주요 테크 기업들은 미국 수출 비중이 거의 없고 내수와 유럽 시장만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점이다. 유럽 경기가 좋아지면 이 수혜까지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증시는 투자처로서 어떤가.
“이달 말 공매도가 재개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들어올 여지가 더 생길 것 같다. 최근 해외 기관들이 한국 투자를 저울질하러 본사에 다녀가기도 했다. 해외 투자자들 입장에선 롱(매수)을 하면서 숏(공매도)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포트폴리오 구성이 쉬워진다. 달러당 원화 환율이 1400원대 중반인 원화 약세 상황도 외국인들에겐 한국 시장에 들어올 유인이 된다. (과거 10년간 평균 원화 환율(달러당 1180원~1200원)보다 원화가 훨씬 약세이기 때문에 달러로 환산한 원화 주식이 싸다는 의미이다.)”
-밸류업 정책이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나.
“(밸류업) 동력이 많이 상실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일본도 정부 주도로 1년 해서 된 게 아니다. 주주 행동주의, 자사주 매입 후 소각 등 주주 친화 정책은 계속 나아가야 할 방향이 맞지 않나. 10년, 15년 이상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주주 환원 여력이 있는 지방은행이나 증권사 등을 눈여겨봄직하다.”
-최근 많은 개인 투자자가 ETF(상장지수펀드)로 직접 투자를 하고 있다.
“특정 테마, 특정 섹터(분야)에 집중된 ETF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몰빵식 투자가 오를 때는 매우 좋은 성과를 내겠지만, 떨어질 때는 반대다. 이슈가 생겼을 때 개인들이 생각만큼 바로바로 대응하기가 쉽지가 않다. 펀드매니저가 투자 종목과 비율을 조절하는 액티브 ETF가 대안일 수 있다.”
-본인의 퇴직연금 계좌엔 어떤 종목, 어떤 펀드가 담겨 있나.
“채권형 위주로 운용하다가 주식형 비중을 늘리고 있다. 최근엔 국내 반도체·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을 모아놓은 ‘코어테크 펀드’를 더 사는 중이다. 반도체 톱2 회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관련 밸류체인에 있는 경쟁력 있는 코스닥 기업들도 들어 있다. 외환 위기 직전에 입사해서 서브프라임, 코로나 시기 등 몇 번의 큰 급락기를 겪어봤다. 내가 가진 종목들이 하한가로 도배된 날도 있었다. ‘지금 주식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더는 희망이 없는 것 아닌가?’ 할 때가 바닥이었고, 이때 용기 있게 들어간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삼성전자도 지금이 바닥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저력이 있는 기업이라고 본다. 너무 힘들고 안 된다고 할 때 길게 보고 투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