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미국이 중국 등 세계 각국에 고율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전쟁의 포성이 울린 가운데, 미국 국채 금리가 요동치고 있다. 통상 주가가 급락하면 미 국채 가격은 오르곤 했다(금리는 하락). 위험 자산인 주식을 파는 대신 최고의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가 ‘피난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상호 관세 발표 이후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7일 한때 연 3.8%대까지 떨어졌는데, 9일 아시아 장중엔 연 4.4%대까지 급등했다. 이틀 만에 금리가 0.6%포인트 뛰었다는 것은 채권 가격이 그만큼 급락했다는 의미다. 이런 움직임은 채권 만기에 상관없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찾느라 분주하다.
①“미국을 못 믿겠다”
관세 인상으로 향후 미국 경기가 가라앉으면 적자 국채 발행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국채를 사줄 충분한 수요가 있겠느냐는 우려가 피어나고 있다. 당장 8일 미 재무부가 580억달러(약 86조원) 규모의 3년물 국채를 연 3.78% 금리에 경매 부쳤는데, 수요가 저조했다. 수요가 부족할 경우 물량을 흡수해야 하는 은행들이 가져간 비율이 기록적으로 높았다.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틴의 매슈 스콧은 블룸버그에 “3년물 미 국채 경매 부진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 국채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소문을 분명히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JP모건은 “이번 (국채) 매도세는 재정 적자 증가와 외국인 수요 약화 우려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미 국채 가격이 얼마이건 무조건 사주던 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 은행 등이 빠져나가고 수익률이 충분히 높아야 사려는 투자자들만 남았다는 의미다.
② 대규모 디레버리징(빚 청산)
미국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직면한 펀드들이 속출했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미국 국채를 팔면서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는 분석이 있다.
헤지펀드들이 미 국채 선물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거두는 이른바 ‘베이시스 트레이드’ 포지션을 빠르게 정리 중인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베이시스 트레이드란 통상 가격이 더 싼 국채 현물을 사고 국채 선물을 팔아 그 차익만큼 얻는 거래 기법이다.
채권 운용사인 아폴로매니지먼트는 “헤지펀드는 최대 100배까지 레버리지를 일으켜 베이시스 트레이드를 한다. 이런 거래 규모가 약 8000억달러”라며 “최근 같은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레버리지가 큰 헤지펀드의 현물 국채 매수 포지션은 빠르게 청산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③중국이 대량 매도?
미국에 최고 104% 관세 폭탄을 맞은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추정’도 있다. 중국은 일본에 이은 세계 2위 미국 국채 보유국이다. 2013년 말 1조3167억달러에 달했던 중국의 미국채 보유 규모는 올 초 기준 7610억달러 수준까지 빠르게 줄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시진핑 중국 주석은 트럼프를 압박하면서 잠재적으로 ‘핵무기급 옵션’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며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도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미국에 대한 타격은 ‘지진’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방어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줄곧 “주식시장엔 관심 없다. 우리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채권 금리를 낮춰야 미 연방 정부의 막대한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트럼프가 이런 상황을 두고 볼 리 없다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묘안’이 있을까. 도이체방크는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스와프(교환)’를 무기로 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영국, 캐나다, 일본, 스위스 등 주요국이 비상시에 달러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열어놓은 상설 스와프 라인을 축소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미국 국채 매입을 종용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로이터통신은 “달러 금융 무기화는 미국 경제에 큰 비용을 초래하고 역효과를 낼 수 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