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강모(43)씨는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 세계 185국에 상호 관세를 매기겠다고 한 이후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미국 S&P500을 좇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샀다. 강씨는 “코로나 때 주가가 폭락했다가 반등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저가 매수의 기회라고 판단했다”며 “다만 환율이 달러당 1500원에 가까울 정도로 오른 점이 부담돼 환헤지형 상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84.1원(주간 종가 기준)으로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10일부터 3거래일 연속 떨어지는 등 하락세로 최근 1420원대까지 내려오자 환헤지형 ETF에 투자한 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원화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없이 해외 주가 반등의 수혜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환노출형 ETF는 해외 투자 대상의 가격이 오르더라도 원화 환율이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면 수익률이 줄어든다. 하지만 환헤지형은 환율 변동에 상관없이 투자 대상 수익률을 대부분 실현할 수 있다.
◇환헤지형 ETF, 수익률 앞섰다
최근 몇 년간 환헤지형 ETF는 환노출형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다. 한미 간 금리 역전이 길어지며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졌고, 환헤지 비용도 있어 실제 수익률이 깎이는 점도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원화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며 더 내려갈 수도 있다는 관측에 환헤지형 ETF로 관심이 몰리고 있다.
실제 지난달 27일~이달 2일 5거래일간 개인 투자자의 ETF 순매수 상위 30위 안에 환헤지형 상품은 한 종목도 없었지만, 이후 5거래일(3~9일) 동안에는 나스닥100 지수를 2배로 추종하는 ‘KODEX 미국 나스닥100 레버리지(합성 H)’ ‘KODEX 미국나스닥100(H)’ ‘KODEX 미국 S&P500(H)’ ‘KODEX WTI 원유 선물(H)’ 등 환헤지형 ETF 4종목이 순매수 30위권에 들었다.
수익률도 환헤지형이 양호했다. 미국 S&P500을 추종하는 ETF 중 환헤지형인 ‘KODEX 미국 S&P500(H)’는 최근 4거래일간 10.04% 오른 반면, 환노출형인 ‘KODEX 미국 S&P500’은 5.94% 상승에 그쳤다. 올 들어 15일까지 두 상품의 수익률은 각각 -10.01%, -12.19%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익률 차이가 뚜렷해진 것이다.
환 노출 여부에 따라 수익률이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갈리는 경우도 생겼다.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는 ‘ACE 미국 30년 국채 액티브’ ETF는 최근 4거래일간 환헤지형이 1.56% 수익을 올린 반면, 환노출형은 -2.43%로 오히려 손실을 봤다.
◇“달러 약세 때는 환헤지형 섞어야”
엔화, 유로화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올 초 109 수준에서 최근 100선까지 하락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달러 약세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상호 관세 혼선이 지속하면서 달러 약세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4월 중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에 주요국 통화에 대한 절상 요구가 담길 경우, 유로화와 엔화 가치의 추가 강세로 이어지면서 원화 가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승훈 삼성자산운용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4년간 이어져 온 달러 강세 기조가 어느 정도 멈췄다고 본다”며 “향후 원화 환율은 1350~1500원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개인 투자자는 전체 투자 자산의 약 30%는 환헤지형으로 구성해 환율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예상과 달리 달러 강세로 가는 경우에는 환헤지형의 수익률이 환노출형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환헤지형 ETF와 환노출형 ETF
환헤지형 ETF(상장지수펀드)는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인 상품이고, 환노출형 ETF는 환율 변동에 그대로 노출되는 상품이다. 투자 대상 자산이 10% 올랐어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00원에서 1200원으로 14.3% 하락할 경우 환노출형 ETF는 환손실로 실제 수익률이 -4.3%이지만, 환헤지형 ETF는 환손실 없이 10% 수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