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나 공약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정치 테마주로 분류된 기업의 대주주나 경영진 등 ‘내부자들’이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주식을 팔아 거액을 챙기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DSC인베스트먼트는 임원 등 8명이 회사 주식을 팔았다고 22일 공시했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 14일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대선 출마 선언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퓨리오사AI를 방문해 “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하자 6470원에서 8410원으로 상한가(30% 상승)를 기록했다. 이 회사가 과거 퓨리오사 AI에 투자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이재명 테마주’로 묶인 것이다.

이후 이 회사 임원들은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주요 임원들은 이후 주식을 대거 팔아 20여 억원씩을 손에 넣었다. 회사 내부자들의 지분 처분 소식에 23일 주가는 11.39% 급락했다.

그래픽=양인성

◇테마주 급등하자 주식 팔아치운 ‘내부자들’

코스닥 상장사인 컴퓨터 업체 에이텍은 신승영 대표가 이 전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 ‘성남 창조 경영 최고경영자 포럼’의 운영위원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이재명 테마주’가 됐다. 작년 12월 초 1만4000원대였던 이 회사 주가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 거론되자 12월 10일 4만500원까지 뛰었다. 신 대표는 주가 폭등 이후 네 차례에 걸쳐 28만주를 팔아 91억여 원을 챙겼다. 또 29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30만주(103억원 규모)를 추가로 팔겠다고 공시했다.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는 “정치인 테마주는 선거가 임박하면 급락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6월 3일 선거 전에 팔겠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재명 테마주로 분류된 오리엔트정공의 장재진 대표도 지난해 1000원 안팎이었던 주가가 급등하자 올해 2~3월 주당 6000원 선에 주식을 팔아 57억5700만원을 챙겼다. 이 전 대표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 본사가 있다는 이유로 테마주가 된 동신건설 대표의 친인척인 우모씨도 주식 59억원어치를 최근 모두 처분했다.

◇‘사전 공시’ 규제를 피해 가는 치밀함

이 전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지역 화폐 운영을 대행했다는 이유로 테마주로 분류된 코나아이의 조정일 대표는 ‘내부자 거래 사전 공시’ 제도를 피해 주식을 판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제도는 작년 7월부터 시행된 개정 자본시장법에 담긴 것으로, 상장사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나 임원이 전체 발행 주식의 1% 또는 50억원어치 이상 주식을 처분할 때 가격, 수량, 예정 기간 등을 거래일 최소 30일 전에 공시하도록 한 규정이다. 내부자가 주식을 대거 팔 경우 주가 하락으로 소액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조 대표는 지난 7~11일 11만5600주를 팔아 총 45억4400만원가량을 챙겼다. 규제를 피하려고 일부러 매각 대금을 50억원 밑으로 맞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대주주나 경영진이 테마주로 묶여 주가가 급등했을 때 선제적으로 ‘해당 정치인과 관계없다’고 해명하지는 못할망정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것은 투자자를 보호할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내부자 거래 시 사전 공시해야 하는 금액을 낮추는 등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개미들만 피 흘린다

정치 테마주에 기웃거리는 개인 투자자들은 “크게 먹고 빨리 팔고 나와야지”라는 순진한 마음을 먹곤 하지만, 결말은 늘 참패다. NH투자증권 통계를 보면 이 증권사를 통해 최근 이재명 테마주 중 가장 거세게 불타올랐던 상지건설에 투자한 사람들의 평균 매수 단가는 21일 기준 4만2263원, 평균 수익률은 -26.49%다. 93.5%의 투자자가 손실을 보는 중이다. 테마주 투자로 이익을 본 사람은 6.5%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다른 테마주 투자자들 사정도 다를 게 없다. 작년 12·3 비상계엄 이후 현재까지 정치 테마주로 분류된 52종목 투자자들의 수익률 평균을 구해보면 -23.1% 수준이다. 투자자 가운데 83%가 손실을 봤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0.5% 내리고, 코스닥은 3.6%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