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한 명당 한 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이건희 회장이 1995년 3월 삼성전자 애니콜 15만대, 5000억원 어치를 불태우고 휴대폰 제품의 품질 향상을 강조하면서 한 이야기다. 그의 예언은 불과 5년여만에 현실이 됐다. 우리나라는 2010년 9월 가입자 5000만명을 돌파했고, 그로부터 또 7년후인 2017년 전 세계 이동통신 보급률은 100%를 돌파해 ‘1인 1 휴대폰’의 시대를 맞았다.
◇'클램쉘' 디자인의 시작…2년만에 1000만대 팔려
이 회장이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품질과 디자인, 가격 경쟁력의 3박자를 모두 맞출 수 있도록 개발을 이끈 제품이 2002년 삼성전자가 선보인 ‘SGH-T100’과 ‘SCH-X430’, 이른바 ‘이건희 폰’이다. 당시로서는 최고 스펙인 31만 화소의 내장 카메라에 동영상 촬영기능을 지원하고, 26만 2000 컬러의 액정디스플레이(LCD) 화면과 64화음 멜로디를 지원했다.
무엇보다 지금 폴더블 폰과 함께 회자되는 이른바 ‘클램쉘’(조개) 디자인의 표본을 만든 제품으로 많은 이들의 추억에 남아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길쭉한 조약돌이나 조개를 닮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전 세계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불과 2년만에 전 세계 1000만대 이상이 판매되면서, 전 세계 시장에 ‘삼성전자=휴대폰’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각인한 제품이 됐다.
이 제품의 후속으로 2003년 8월 선보인 안테나가 몸통 속으로 들어간 인테나폰(SGH-E700) 역시 이건희 회장이 직접 챙긴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벤츠폰’이라는 별명과 함께 제2의 ‘이건희 폰’으로도 불렸다. 한 모토로라 전직 임원은 “이 두 제품을 시작으로 모토로라와 삼성의 시장 점유율이 완전히 역전되고,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오늘날 ‘삼성 모바일’ 브랜드 파워의 시작이 된 제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삼성 ‘갤럭시’ 신화와 구글 안드로이드폰의 시대를 열다
2010년 등장한 ‘갤럭시S’ 역시 출시까지 ‘이건희 폰’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주목을 받았었다. 전작 ‘옴니아’폰이 시장에서 혹평을 받고, KT의 아이폰에 맞서 옴니아폰을 내세웠던 SK텔레콤마저 곤란한 처지에 빠지자 이건희 회장이 직접 제품 개발과 출시를 챙기면서 또 한 번의 이건희폰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3G는 물론 와이파이 접속이 가능했고, 1㎓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1500㎃h의 배터리, 그리고 손가락 압력이 아닌 터치로 화면 입력을 인식하면서 LCD보다 훨씬 밝고 화사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화면을 최초로 채택했다. 아이폰을 능가하는, 당시로서는 압도적인 최고 사양이었다. 그해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한 이건희 회장이 무선 사업부를 직접 독려하면서 “갤럭시S에 올인하라” “스마트폰 제품의 출시 주기를 앞당겨라”고 특명을 내린데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갤럭시S가 나오면서부터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은 애플 아이폰과 성능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한 전직 삼성전자 임원은 “그때 사내엔 갤럭시S를 놓고 ‘오버 스펙(필요보다 과도한 사양)’이라는 말도 있었고, 구글 안드로이드폰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통찰과 과감한 판단이 있었기에 갤럭시S라는 제품이 나올 수 있었고, 덕분에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이 지금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