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의 한 IT 기업에서 일하는 류현정(34)씨는 16일 오전 7시 업무 자료를 받으려 구글 지메일에 접속했지만 메일을 읽기는커녕 웹사이트 연결도 할 수 없었다. 지메일을 포함해 유튜브와 구글 드라이브(인터넷 파일 저장) 등 구글의 여러 서비스가 동시에 마비됐기 때문이다. 류씨는 “이틀 전에도 구글 서비스 오류로 해외 업체가 이메일로 보낸 문의에 제때 회신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같은 장애가 발생하면서 류씨를 비롯해 전 세계 15억명에 달하는 구글 서비스 이용자들이 1시간 가까이 이메일과 인터넷 문서 작성 서비스 등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었다. 지난 14일 오후 8시 30분쯤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 지 36시간 만이다.
구글 서비스가 불과 며칠 간격으로 연달아 장애를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T(정보기술) 업계에선 “특정 기업이 운영하는 인터넷 서비스에 의존하는 ‘클라우드(원격 컴퓨터) 시대'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구글 같은 기업의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이용하는 수많은 기업들의 업무가 줄줄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기업뿐 아니라 정부 기관까지 클라우드 기반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만약의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 규모는 전과 비교할 수 없게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클라우드에 기반한 IT 서비스가 무너지면 사회적 피해가 커지는 ‘디지털 스노데이(폭설로 인한 사회 마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비대면 시대, ‘클라우드의 저주'
클라우드 서비스는 구글 같은 대형 IT 기업이 다양한 용도에 쓸 수 있는 수천 대의 대형 컴퓨터(서버)를 갖춰놓고, 소비자나 기업들이 인터넷으로 접속해 문서 작성, 데이터 저장과 분석, 게임 등 컴퓨터의 다양한 기능을 원격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기업의 경우 예전엔 각각 자기 소유의 서버를 두고 데이터를 저장·관리했다. 하지만 데이터가 폭증하고 이에 대한 관리 부담이 늘어나자 아예 외부에 맡기는 방법으로 클라우드를 쓰고 있다. 예상치 못한 데이터 사용 증가에 대비해 서버 설비를 늘릴 필요가 없고, 데이터 관리에 필요한 인력도 줄여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IT 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약 80%가 구글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쓰고 있다.
특히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다루는 AI(인공지능)와 신약 개발 등에 클라우드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우리 정부도 ‘디지털 뉴딜'의 핵심 산업으로 클라우드를 꼽으면서 이를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과 학교, 행정기관에도 확산시키려 애쓰고 있다.
IT 전문가들은 “하지만 클라우드에 대한 사회적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그 리스크도 동시에 커진다”라고 지적한다. 사회 전반에 클라우드 서비스가 파고들면서, 클라우드 서비스의 문제가 사회 전체의 기능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클라우드의 저주'다.
실제로 이번 두 차례에 걸친 구글 서비스 마비로 유튜브를 비롯 지메일·캘린더(일정)·드라이브(파일 저장)·미트(온라인 화상회의) 등 주요 구글 서비스가 모두 중단됐다. 미국에선 지난 14일 구글 미트와 지메일 중단으로 일부 학교가 휴교했다. 일부 신문사와 방송사에서는 기사와 사진을 보내는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아 전화로 글의 내용을 불러주고, USB 메모리에 사진을 담아 전달하는 일이 벌어졌다.
◇피해 보상은 어려울 듯
구글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엔 클라우드 시장 1위인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에 이상이 발생, AWS를 사용해온 미국 동부 지역의 기업들이 기업들이 피해를 입었다. 대형 유통 업체 타깃은 온라인 배송 업무 처리에 차질을 빚었고, 뉴욕시의 지하철 현황 사이트도 오류가 발생했다.
한국도 안심하기 어렵다. 배달·원격 수업 등 클라우드에 기반한 비대면 서비스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쿠팡(이커머스)·배달의민족·야놀자(이상 음식 배달)·업비트(가상 화폐 거래) 등이 AWS에 기반하고 있다. 네이버의 간편 결제 서비스인 네이버페이가 지난 8월 두 차례 장애를 일으켜 수십만명의 이용자들이 온라인 쇼핑에 불편을 겪기도 했다.
정부는 일단 이번 사고의 원인 파악에 나섰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15일 “구글에 ‘서비스 장애 원인 파악을 위해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서비스의 속도 저하나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비스 업체의 관리 책임을 묻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일명 ‘넷플릭스법’을 처음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피해 보상을 받기는 힘들어 보인다. 세계 각국 이용자들의 문의와 항의에도 구글은 아직 피해 보상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구글 약관에 피해 보상을 규정하는 조항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관련법(전기통신사업법)에서는 유튜브 같은 서비스 업체는 4시간 이상 장애가 발생하면 이용자에게 손해배상 절차를 알리게 돼 있다. 이번처럼 1시간 정도 장애가 발생한 경우는 해당하지 않아 소비자 피해 보상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