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이미지./뉴시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22일 “가상 화폐 투자자는 보호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데 대해, 진작부터 가상 화폐 규제 법안을 마련해 투자자 보호에 나선 해외 선진국들의 발 빠른 대응에 정부가 눈감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일본·홍콩 같은 나라들은 가상 화폐 공개(ICO) 단계부터 관리·감독에 나서며 공시 의무 같은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 장치를 운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2018년 1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가상 화폐 거래소 폐지를 언급한 이후 지금까지 가상 화폐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아무런 규제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여당에선 이제야 “투자자 보호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진국은 가상 화폐 상장 심사, 공시 의무 부여

미국은 투트랙으로 가상 화폐를 규제한다. 연방 기구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가상 화폐를 금융·증권 상품으로 규제하고, 가상 화폐 거래소 같은 유통 시장은 개별 주법으로 관리·감독하고 있다.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주는 2015년 세계 최초의 가상 화폐 특화 법률인 ‘비트 라이선스(면허)’를 만들어 이용자 보호에 나섰다. 거래소는 면허를 따야 영업이 가능하고, 공시와 불법 자금 세탁 행위 예방 의무를 지닌다. 워싱턴주는 기존 자금송금업법에 근거해 가상 화폐 거래소를 규제한다. 체계적인 규제를 도입한 결과, 미국에선 지난 14일 코인베이스가 가상 화폐 거래소로는 세계 최초로 상장에 성공했다.

롤러코스터 타는 비트코인 - 26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의 서울 강남센터 전광판에 시세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개당 6000만원을 밑돌던 비트코인 가격은 오후 6200만원대로 반등했다. /김지호 기자

가상 화폐 규제를 가장 강하게 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2014년 가상 화폐 거래소 ‘마운트곡스’ 해킹 사건을 겪으며 가상 화폐 관련 규제 법안을 잇따라 도입했다. 2019년 개정된 ‘자금결제법’과 ‘금융상품거래법’은 가상 화폐 교환업자는 당국에서 인허가를 받도록 규정했다. 거래소는 가상 화폐 불법 유출을 막기 위해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할 의무도 진다. 또한 거래소에 가상 화폐를 상장하려면 금융청의 사전 심사를 거쳐야 한다. 주식 상장과 비슷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아시아의 금융 허브인 홍콩과 싱가포르는 가상 화폐를 투자 상품으로 규정하고 제도화했다. 지난해 11월 홍콩 재무국은 증권선물위원회가 모든 가상 화폐 거래를 감독하도록 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발표했다. 가상 화폐 거래소는 고객의 재무 상황에 따라 거래 한도를 설정해야 하고, 고객이 복수의 계좌를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규제 준수 상황을 담은 보고서를 매년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가상 화폐 거래 자격을 개인이 아닌 전문 투자자에게만 부여하도록 했다. 현지 투자자들은 “지나친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싱가포르도 지난해 1월부터 ‘지불서비스법’을 통해 블록체인 및 가상 화폐 사업자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유럽도 가상 화폐 관련 규제를 속속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9년 기업성장변화법을 통해 ICO를 규제하고 있다. ICO를 할 때, 일정 요건을 갖춰 허가받지 않으면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을 수 없도록 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까지 포괄적인 가상 화폐 규제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 “시장 인정하고, 투자자 보호 방안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가상 화폐 하루 거래량이 코스피를 추월하고 가상 화폐 투자자도 500만명을 넘어선 만큼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국내 가상 화폐 시장은 올해 1분기 160만에 이르는 2030세대를 포함해 250만명이 새로 뛰어들 만큼 과열되고 있다. 특히 투자자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단타 투자 중심이어서 투기성이 심해지고 있다. 반면 가상 화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전달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소장은 “정부는 2017년부터 초지일관 가상 화폐 거래 시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시장을 인정하고 관련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