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부 네이멍구(内蒙古)자치구는 지난 25일 가상화폐 채굴 행위 척결을 위한 초강력 규제안을 공개했다. 장기적인 경제발전 전략을 담당하는 국가기구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이름으로 발표된 규제안의 제목은 ‘가상화폐 채굴 행위를 결단코(堅決) 타격하고 처벌·경계하기 위한 8개 조치’였다. 이르면 6월부터 시행되는 이 규제안은 채굴 업자를 단속하는 수준을 넘어 채굴 업자에게 땅을 빌려주거나 전기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과 기업을 처벌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관영 매체인 중국청년보는 “앞으로 중국에서 가상화폐 채굴은 역사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가상화폐 채굴 행위가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 가상화폐 업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가상화폐 채굴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자신의 컴퓨터 연산 능력을 제공한 대가로 가상화폐를 보상으로 얻어내는 행위다. 전력 소모가 커서 중국·중앙아시아·이란처럼 전기료가 상대적으로 싼 나라에 집중돼 있다. 특히 전체 채굴장의 65%를 차지하는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장이 한꺼번에 모두 문을 닫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게될 경우, 비트코인 네트워크 자체가 먹통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가 가상화폐 채굴에 가장 많이 쓰이는 자사 그래픽반도체(GPU)의 채굴 성능을 대폭 떨어뜨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로 채굴 업자들은 막대한 전기를 써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환경 앞세워 채굴 ‘대청소’ 나선 中
네이멍구자치구의 채굴 규제안은 중국 국무원이 지난 21일 “가상화폐 채굴과 거래를 타격하겠다”고 밝힌 뒤 4일 만에 나왔다. 중국은 지난 2017년부터 자국 내 가상화폐 거래 및 가상화폐 공개(ICO)를 통한 투자 모금 행위를 금지했지만, 채굴 사업만은 별다른 규제 없이 허용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가상화폐 가격 폭등으로 채굴업체가 급격하게 늘어나며 급기야 대규모 정전 사태까지 발생하자 정부 차원에서 철퇴를 날린 것이다. 중국 정부 산하 중국과학원은 최근 “비트코인 채굴 행위를 이대로 두면 2060년엔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는 국가적 목표에 차질이 생긴다”고 경고했다.
네이멍구자치구의 규제안은 관할 지역 내 모든 사람·업체가 채굴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면 ‘국가에너지절약법’과 ‘국가전력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처벌과 동시에 개인 또는 기업을 ‘신용 불량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중국 내에서 고속철·항공권 등의 구매가 제한되는 초강력 블랙리스트에 올려 ‘사회적 사형’을 시키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번 조치 직후 대형 비트코인 채굴장을 운영 중인 중국 훠싱윈·비트디어 등은 중국에서 가상화폐 채굴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고, 대표적인 비트코인 채굴장인 앤트풀과 바이낸스풀의 채굴 능력은 5월 초 대비 10~20%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엔비디아까지 ”그래픽카드 채굴에 못 쓰게 할 것”
중국의 규제 외에 악재는 또 있다. 세계 컴퓨터 G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지난 18일(현지 시각) 이달 말부터 판매가 시작되는 신규 GPU 3종에 채굴 관련 연산 능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힌 것이다. GPU는 원래 PC게임에서 고화질 영상과 빠른 동작을 구현하기 위한 부품이다. 하지만 가상 화폐 채굴에도 높은 효율을 보이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채굴업자들이 사재기하고 있다. 현재 시중에서 거래되고 있는 엔비디아 GPU는 출고가보다 몇 배씩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고, 이마저 구하기가 어렵다. 현재 이더리움 채굴에 쓰이는 GPU의 90%가량이 엔비디아 제품이다. 결국 이번 조치로 채굴업자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중국과 엔비디아발 악재가 가상화폐 업계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채굴이나 GPU는 가상화폐 시스템을 굴리는 근간”이라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의 가상화폐 옹호 발언 등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있으면 단기적인 등락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초대형 악재를 만난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