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충무로 한 모텔에 전화로 문의한 숙박 요금은 3만6500원(1인실). 하지만 같은 시각 숙박 앱에 뜬 이 모텔 1인실 가격은 그보다 18% 비싼 4만3000원이었다. 같은 날 종로 한 모텔도 앱 예약 가격이 전화 예약보다 3000원 높았다. 모텔 매니저는 “요즘은 손님 대부분이 앱으로 예약하는데 직접 예약하면 10% 안팎인 숙박 앱 수수료를 빼준다”고 말했다.
‘같은 서비스, 다른 가격’은 외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서울 송파구 한 중식집은 배달 앱용 메뉴판이 가게 메뉴판보다 2000원씩 비싸다. 앱 수수료와 배달료 탓이다. 이 식당에서 자주 배달을 시킨다는 직장인 박모(38)씨는 “네 식구가 메뉴 5개를 시키면 가게에서 먹는 것보다 1만원이 더 든다”고 말했다. 박씨는 “편하기도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나가서 먹기가 꺼림칙해서 비싸지만 앱으로 주문한다”고 말했다. 교통분야에선 최대 3000원을 더 내면 ‘빠른 호출’을 약속하는 택시 앱 덕분에 같은 시각 같은 거리를 달려도 택시비가 달라지는 시대가 됐다.
생활 모든 영역에서 플랫폼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소비자들은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비싸진 물가’를 체감하고 있다. 수수료라는 연결 비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광고비, 배달비, 결제 수수료 같은 업주 입장에선 예전에 없던 추가 비용도 늘고 있다. 그 결과 음식점은 배달 가격을 수천원씩 높이고, 숙박 업체는 투숙료를 수만원씩 비싸게 앱에 올린다. 콜택시 앱이 장악한 거리에선 비용이 추가로 붙는 빠른 배차 서비스를 외면하기 쉽지 않다.
문제는 플랫폼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은 사실상 선택의 자유가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플랫폼 만능 시대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부작용이다. 해외에선 소비자 편익보다 과도한 이익을 누리는 거대 플랫폼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시작됐다. 하지만 국내에선 플랫폼 서비스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숙박앱선 45만원짜리 펜션, 전화 예약하니 “42만원에 드릴게요”
직장인 서모(27)씨는 지난달 29일 숙박 앱 ‘야놀자’에서 경기도 가평의 한 펜션을 예약하려다 멈칫했다. 펜션 자체 홈페이지에 안내된 가격보다 3만원 비싼 45만원으로 표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펜션에 전화를 걸어 ‘왜 앱에선 가격이 다르냐’고 문의하자, 펜션 사장은 “숙박 앱은 수수료 지출이 따로 있어서 조금 비싸게 올렸다. 전화로 예약하고 현장에서 결제하면 정상 가격에 해주겠다”고 답했다. 서씨는 “같은 방을 돈을 더 지불하고 숙박할 뻔했다”고 했다.
◇펜션·커피 다 비싸졌는데 대안이 없다
국내 숙박 예약의 60% 이상이 숙박 앱에서 이뤄지고, 콜택시 시장의 80%를 카카오T가 점유한다. 외식 시장에선 코로나로 인해 식당도 소비자도 배달 앱을 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플랫폼 산업이 전 분야로 확산되면서 같은 상품·서비스의 가격이 달라지고, 다수의 소비자는 비싼 가격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디저트 가게는 홀에서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은 4500원이지만, 배달을 할 경우엔 5000원을 받는다. 케이크 가격도 홀보다 앱이 1000원 비싸다. 건당 1000원의 플랫폼 수수료와 최대 5000원에 이르는 배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배달 음료나 음식을 매장보다 더 비싸게 받고 있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이중 가격을 책정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배달 앱용으로 매장 상호를 따로 등록하기도 한다. 사실상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직장인 조모(56)씨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치킨집이나 중국집에 배달 주문을 하면 ‘식당에서 차리는 비용이 안 든다’며 가격을 깎아주거나 그대로 받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더 비싼 돈을 내고 주문해야 한다”면서 “소비자들은 내는 돈이 늘어났는데 자영업자가 버는 몫은 줄고 결국 플랫폼 기업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업주들 입장에선 플랫폼 입점을 포기할 수도 없다. 서울 중구의 한 모텔은 지난달 총매출 4000만원 중 숙박 앱 ‘야놀자’를 통해 1500만원을, ‘여기어때’를 통해 900만원을 벌었다. 이 모텔 사장은 “야놀자를 통해 발생한 1500만원의 경우 수수료, 카드 수수료, 쿠폰 비용과 광고비 등으로 500만원 이상이 나간다”며 “여기서 다시 인건비와 유지비 등을 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전체 매출의 60%가 두 플랫폼에서 나오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들은 “사과를 농촌 산지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과 백화점에서 살 때 가격이 다른 것처럼 플랫폼이 제공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고려하면 수수료로 인해 가격이 오르는 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백화점을 갈지, 산지를 방문할지는 선택할 수 있지만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대안이 없는 과도한 종속 현상이 벌어진다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플랫폼 종속은 소비자·자영업자 모두에게 손해
음식·숙박 등 플랫폼 업체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질수록 자영업자와 소비자들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의 물가 조사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숙박 물가의 경우 숙박 앱을 통해 결제하는 사례는 물가 조사에 아예 반영되지 않는다. 외식 부문에선 짜장면 가격의 경우 중식집을 상대로 배달 가격을 확인해 물가 지수에 반영한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하지만 배달 앱을 통해 결제된 음식값은 배달 조건별로 다 달라 업주들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라 통계청 조사에도 한계가 있다.
현재 국내 플랫폼 업체들은 배달비 지원 같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출혈 경쟁이 끝나고 승자 독식의 독점 시장으로 재편되면 이 업체들을 제재하거나 견제할 방법도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글로벌 인터넷 검색 시장을 장악한 구글이 클라우드(가상 서버), 포토, 메일 등 무료로 제공하던 서비스를 유료화로 전환하고 있는 것처럼 플랫폼 기업들도 경쟁자가 줄어들수록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들에 대한 혜택은 줄이고 수수료는 높이려고 할 것”이라며 “정부가 플랫폼 사업을 새로운 산업으로 규정하고 제도권 안에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