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은 역사를 가진 글로벌 제조업 공룡들이 잇따라 기업 해체라는 고강도 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다. 미국 존슨앤드존슨(J&J)과 제너럴일렉트릭(GE), 일본 도시바가 회사를 쪼개겠다고 선언했다. 공격적인 사업 다각화로 전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거대 제조업체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들은 ’현대 기업의 모델’로 불렸지만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직원들이 관료화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면서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새로운 생존 전략”이라고 보도했다.

◇쪼개지는 J&J·GE·도시바

앨릭스 고스키 J&J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현지 시각) “제약·의료기기 사업부와 소비자건강 부문을 분리하는 기업 분할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며 “135년 기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처방약과 의료기기, 코로나 백신 같은 제약 사업은 현재의 J&J 사명을 사용하고, 타이레놀·구강청결제 리스테린·화장품 뉴트로지나 등은 소비재 전문 회사로 떨어져 나간다. J&J는 화장품과 상비약으로 벌어들인 돈을 신약 개발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올려왔지만 최근 두 사업 부문의 엇갈리는 실적으로 고민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성장세가 높지만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신약 사업과 수익성이 낮고 유행을 타는 소비재 부문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 손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J&J의 라이벌인 화이자는 2019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MSD는 지난해 각각 제약 사업과 소비재 사업을 분리했다.

미국 최대 제조 기업인 GE는 지난 9일 “2023년 초까지 헬스케어 부문을 분사하고, 2024년 초까지 에너지 부문을 분리하겠다”면서 “항공 부문만 현재의 GE라는 이름을 유지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로런스 컬프 GE CEO는 “업계를 선도하는 3개의 글로벌 기업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원 배분을 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1892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창업한 GE는 1980~1990년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잭 웰치가 CEO를 맡으며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 반열에 올랐다. 가전과 항공엔진, 동력 터빈 같은 제조업은 물론 금융서비스·방송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웰치가 재임 기간에 인수한 기업만 1700곳이 넘는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로 금융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급격히 몰락했다.

1875년 설립된 일본 도시바도 12일 “2년 내에 발전설비를 맡는 인프라,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제조하는 디바이스, 메모리 반도체 등 3개 분야로 회사를 분할하겠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00여 개 기업 연합체인 도시바는 사업 부문 간 실적과 전략에서 차이가 빚어지며, 개별 사업 부문의 가치보다 전체 기업 가치가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젠 빅테크가 글로벌 공룡

전문가들은 거대 기업의 분할을 시대적 변화를 따라잡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로 보고 있다.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바탕으로 J&J의 제약·의료기기, GE의 헬스케어, 도시바의 반도체처럼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CNN은 “기업 경영자들은 복합적인 사업을 보유한 거대 기업의 형태로는 더 이상 회사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면서 “전통 제조 업체들의 분할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IBM과 화학기업 다우듀폰이 이미 기업을 분할했고 월가에서는 다음 기업 분할 후보로 3M을 지목하고 있다.

제조업이 이끌던 거대 기업의 계보는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이 이어받을 전망이다. 빅테크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과감한 의사 결정으로 수많은 기업을 집어삼키며 성장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최근 3년간 가상현실(VR)과 게임 관련 기업 21곳을 인수했고, 애플도 AI(인공지능) 기업 25곳을 합병했다. 조대곤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실리콘밸리 빅테크는 제조업체들과 달리, 인터넷이라는 확실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연관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면서 “잠재적인 미래 경쟁자를 제거하고 독점력을 강화하는 효과까지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