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수퍼볼’을 점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는 13일 열리는 NFL(미 프로풋볼) 챔피언결정전인 ‘수퍼볼’의 TV 광고를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대거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매년 약 1억명의 미국인이 TV로 지켜보는 수퍼볼은 경기만큼이나 값비싼 광고도 화제다. 올해 30초 광고의 단가는 역대 최고가인 700만 달러(약 84억 원)로, 1초당 2억 8000만원에 달한다.
WSJ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수퍼볼 광고는 가상자산 산업이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올해 수퍼볼이 2000년 닷컴 기업들이 수퍼볼을 점령해 ‘닷컴 볼’이라 불렸던 당시를 연상케 한다고 했다. 포춘은 올해 수퍼볼을 ‘크립토(가상화폐를 줄인 말) 볼’이라고 부른다.
◇36조원 등에 업은 가상자산 거래소
올해 수퍼볼 광고전에 뛰어든 가상자산 거래소는 미국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글로벌, 가상 화폐 파생상품 거래소인 FTX, 가상자산 결제 플랫폼 크립토닷컴 등이다. 캐나다의 가상 화폐 거래소인 비트바이는 자국서 중계되는 수퍼볼 방송에서 광고를 내보낸다. 다만, 창업자가 중국계인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는 7일부터 수퍼볼 광고에 참여한 경쟁사들을 비판하는 광고를 낸다. 중국 눈치를 본다는 분석이다.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거액을 들여 수퍼볼 광고를 내보내는 이유는 자금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업계에 흘러 들어간 벤처 투자금은 300억 달러(36조원)에 달한다. 컨설팅업체인 IEG는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자금력을 무기로 스포츠 마케팅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올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북미 지역 광고비로 1억 6000만 달러(약 2000억원) 이상을 지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퍼볼이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도약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존 안틸 델라웨어대학 부교수는 “수퍼볼처럼 유명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 행사에서 광고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선 손쉽게 합법성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면서 “가상 자산 투자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바꾸고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계에서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이미 큰 손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7월 미국 NBA 프로농구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는 NBA팀 최초로 가상화폐 플랫폼 스톰X와 광고 계약을 체결해 선수들의 유니폼에 회사 로고를 새겼다. FTX는 지난해 3월 NBA 프로농구팀 마이애미 히트의 경기장 명칭을 ‘FTX 아레나’로 바꾸는 대가로 1억3500만달러(1532억원)를 지불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 무대인 F1(포뮬라1)은 지난해 6월 가상화폐 결제 플랫폼 크립토닷컴과 1억달러(약 1135억원)에 달하는 홍보 계약을 맺었고,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겟은 지난달 러시아 e스포츠 기관인 ‘팀 스피릿’과 스폰서십을 체결했다.
◇국내 빅4 가운데 3곳도 스포츠 협찬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가운데 3곳도 스포츠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는 타이틀 스폰서를 맡아 국내 첫 프로탁구 리그를 출범시켰다. 지난달 개막한 한국프로탁구리그 경기장에서는 ‘두나무’ 로고가 전광판 곳곳에서 보인다.
빗썸은 지난달 24일 e스포츠 전문 기업 ‘젠지 e스포츠’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젠지 펍지(PUBG·배틀그라운드) 팀’과 ’울 다이너스티(오버워치)팀’ 후원에 나섰다. 두 팀은 계약기간 동안 빗썸 로고가 새겨진 젠지 공식 유니폼을 입고 활동하게 된다. 코인원은 2018년 프로야구 넥센히어로즈와 스폰서십 계약을 했다. 넥센히어로즈 선수단은 당시 한 시즌 동안 유니폼 우측 소매에 코인원 로고를 부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