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경기도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소액 주주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가 주주총회 온라인 중계와 전자표결을 도입한 데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날 현장을 찾은 주주는 1600여 명에 이르렀다. 작년 참석자 900명의 두 배 가까운 수치였다. 소액투자자가 506만명까지 늘어나면서 ‘국민주’로 불리는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한 주주는 “사상 최대 실적에도 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유를 경영진으로부터 직접 듣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현장을 찾은 투자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20~30대 젊은 투자자가 급격히 늘어난 점을 감안해 행사장 로비에 인증샷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과 회사에 바라는 점을 적을 수 있는 ‘응원메시지 월’을 설치했다. 삼성전자는 전자표결 단말기 사용 방법과 셔틀버스 등을 담은 안내 브로셔도 처음으로 배포했다.
◇날카로운 질문 쏟아진 주총
이날 주주총회의 최대 화두는 갤럭시 스마트폰 성능 저하 사태였다. 삼성전자는 최근 출시한 갤럭시S22 시리즈에서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게임을 실행하면 기기 보호를 위해 성능을 낮추는 ‘GOS(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 기능이 작동되도록 한 사실이 드러나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0일 소비자들이 기능 작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실시한 뒤에도 소비자들의 불만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주총 행사장 밖에서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갤럭시 이용자 모임이 트럭 뒤에 대형 스크린을 달아 ‘소비자 기만하는 삼성, 고객 우롱하는 갤럭시’ 등의 문구를 내보냈다.
행사가 시작되자 주주들도 “이번 사태로 소비자 신뢰가 많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회복할 거냐” “안전 문제는 없느냐”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한종희 부회장은 “주주와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 고객 마음을 처음부터 헤아리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연단 아래로 내려와 허리를 90도로 숙여 사과했다. 이어 “앞으로 고객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 이러한 이슈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고 고객 경험을 최우선으로 해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주주총회처럼 일부 참석자의 고성이나 막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삼성전자의 사업 현황과 신기술, 경쟁사에 대한 대응 방안 등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날카로운 질문이 많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렇게 전문적인 질문이 많은 주주총회는 처음”이라며 “젊은 투자자들이 회사에 대해 분석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계현 반도체 부문 사장에게는 “5나노 반도체 수율(완성품 비율)이 너무 낮아서 걱정된다” “기존 고객인 퀄컴과 엔비디아가 대만 TSMC로 간다는 뉴스가 있는데 확인해달라”는 질문이 나왔다. 경 사장은 “5나노 이하 공정은 복잡도가 높지만,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안정화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주주는 “주가가 9만6800원을 찍고 30% 넘게 떨어졌는데, 경영진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로봇·메타버스 집중 육성할 것
삼성전자는 이날 로봇과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한종희 부회장은 “다양한 영역에서 로봇 기술을 축적해 미래 세대가 ‘라이프 컴패니언(삶의 동반자)’ 로봇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면서 “언제 어디서나 메타버스를 즐길 수 있는 기기와 설루션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삼성전자 지분 8.69%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일부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노태문 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이 97.9%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는 등 상정된 모든 의안이 원안대로 가결됐다. 삼성전자는 주총 직후 이사회를 열어 하나금융공익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김한조 사외이사를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가 맡는 것은 전임 박재완 의장에 이어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