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금융·농업 같은 다양한 산업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저장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대가로 가상화폐를 받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등장할 겁니다. 우리의 투자 대상도 블록체인과 시너지를 낼 사업에 도전하는 스타트업들입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스타트업 전문 투자기업인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38)는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 중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된 해외 스타트업이 4곳이나 나왔다”고 말했다. 사명인 ‘해시드(Hashed)’는 완전히 부서져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호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근간이 된 미래의 탈(脫)중앙화 경제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며 만든 이름이다.
김 대표가 2018년 설립한 해시드는 첫 펀드(1200억원 규모)를 포함해 총 36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운용하고, 한국·미국·인도·동남아 등 글로벌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작년 12월 결성한 두 번째 펀드는 2400억원 규모로, 지난해 만들어진 모든 벤처펀드 중 2위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네이버·SK·LG·하이브·크래프톤 등 쟁쟁한 기업들이 출자사로 참여했다.
해시드는 서울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두고, 투자 대상을 발굴해왔다. 세계 최대 규모 NFT(대체 불가능 토큰) 기반 게임 엑시인피니티를 개발한 베트남 유니콘 스카이마비스, 메타버스 게임을 출시한 미국의 더 샌드박스 등 굵직한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해 ‘아시아의 대표 블록체인 투자사’로 꼽힌다.
이달 초에는 세계 최고 가치 NFT로 꼽히는 ‘BAYC(Bored Ape Yacht Club·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 클럽)’를 만든 미국 유가랩스에도 초기 투자를 했다. 총 1만개 발행된 BAYC는 1개당 최저 입찰가가 5억원이 넘고, 미 프로농구 스타 스테픈 커리 등 유명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김 대표는 “BAYC 소유자들이 이 NFT를 활용해 의류, 메타버스 게임, 코인 등을 만들어 사업을 벌일 만큼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엔 농업(그린랩스), 코딩교육(코드스테이츠) 등 당장은 가상화폐와 직접 관련이 없는 회사에도 투자를 단행했다. 김 대표는 “예컨대 그린랩스는 농민들이 도매가와 보조금 정보를 조회하고, 비료를 사는 데 쓰는 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라며 “만약 농부 개인의 농법·작황 등에 대한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조금과 대출을 중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로 확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고와 포항공대를 나온 김 대표는 2015년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을 만나면서 가상화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이더리움 투자를 시작했다. 당시 이더리움의 가격은 개당 1달러 이하였고, 현재는 약 2800달러다. 그는 “한국은 코인 발행(ICO)이 불가능하고, 금융기관들도 코인에 투자를 하지 못한다”며 “이로 인해 한국인들이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워 코인을 발행하고 싱가포르에 세금을 내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최초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열풍을 일으킨 것은 채굴만 하면 누구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평등하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이라는 것”이라며 “가상화폐는 데이터, 메타버스와 만나 새로운 경제를 구축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