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의 급락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이 공황에 빠졌다.”(블룸버그 통신)
금리 인상과 미 증시 추락에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 폭락 사태까지 터지면서 12일 가상화폐 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2000억달러(약 257조원) 이상 증발했다. 한때 합산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었던 루나, 테라가 휴지 조각이 되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 충격파로 가상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도 12일 3% 이상 하락하며 한때 2만6000달러(약 3340만원)까지 떨어졌다. 지난 2020년 12월 이후 16개월 만이다. 미 CNBC는 이를 ‘뱅크런(은행 대규모 인출 사태)’에 빗대 가상화폐 시장에 ‘코인런’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코인런 사태’로 비트코인 동반 추락
사건의 발단은 한국산(産) 가상화폐인 ‘테라’와 ‘루나’의 폭락이다. 테라는 개당 가격이 1달러에 고정되도록 설계한 가상화폐, 이른바 ‘스테이블(stable) 코인’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자매 코인인 ‘루나’를 발행하거나 소각하는 방식으로 테라의 가격을 유지해왔다.
지난 7일 세계 3대 스테이블 코인으로 꼽혔던 테라의 가격이 소폭 하락하자 그 담보 역할을 하는 가상화폐 루나 가격이 10%가량 떨어졌다. 코인 가격이 출렁이자 겁이 난 투자자들의 매도 행렬이 이어졌고, 코인 발행사인 ‘테라폼 랩스’는 테라 가치를 1달러로 유지하기 위해 6조개가 넘는 루나를 발행했으나 가격 하락만 부추겼다. 결국 지난달 5일 119달러(약 15만3000원)였던 루나 가격은 13일 오후 0.00003달러가 됐다. 가격이 99.99% 폭락한 것이다. 1달러 가치를 유지해야 시장에서 기능할 수 있는 테라 역시 0.19달러까지 가격이 주저앉으며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13일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와 국내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고팍스 등이 루나를 상장폐지했다.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루나를 보유한 투자자는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루나·테라 사태는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의 불안감을 부추기며 투자자들의 매도 행렬을 불러왔다. 비트코인 가격이 16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고, 시총 2위 가상화폐인 이더리움도 2000달러 선이 무너지며 작년 7월 이후 최저가를 기록했다. 13일 두 가상화폐의 가격은 전날 대비 다소 회복됐지만 시장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가상화폐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아 많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원화·달러·유로를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꿔 ‘예비 투자금’처럼 보유하고 있었다”며 “여기서 문제가 터지자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극대화되고 시장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특히 스테이블 코인의 자산 담보가 적거나, 테라처럼 현금 자산 없이 코인을 담보로 삼고 있는 점이 결정적인 취약점으로 거론된다.
◇”가장 안전한 가상화폐의 배신”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각국의 규제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최근 이 사건을 거론하며 “테라의 폭락은 (스테이블 코인이) 빠르게 성장하며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스테이블 코인 규제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했다. 옐런 장관은 지난달에도 지난해 6월에 벌어졌던 ‘타이탄 코인’ 폭락 사태를 언급하며 스테이블 코인 규제를 촉구한 바 있다.
한국 금융 당국도 스테이블 코인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사실상 은행의 요구불예금(예금주가 지급을 원하면 언제든지 조건 없이 지급하는 예금)의 역할을 자처하면서도 현금 담보가 부족하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현금이나 실물자산과 연동되지 않는 스테이블 코인은 사실상 사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여전히 가상화폐의 잠재력이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군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상화폐 산업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과도한 규제를 가하게 되면 미래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