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는 소프트웨어 말고도 하드웨어 유산이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24일(현지 시각) 아시아·태평양 국가 기자들과 가진 온라인 간담회에서 구글의 하드웨어 전략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기능을 강화하고 각종 서비스를 만들며 소프트웨어에 치중했지만 사실은 오래 전부터 자체 맞춤형 서버를 만들고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며 하드웨어 사업의 명맥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피차이는 “초기 구글의 사진을 보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창업자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를 연구하는 장면이 있다”고 했다.
피차이 CEO가 하드웨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구글의 행보와 맞닿아 있다. 구글은 지난 11일 연례 개발자 대회인 ‘구글 I/O’에서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글라스 등 6개의 새로운 하드웨어를 선보였다. 테크 업계에선 “소프트웨어 중심이던 구글이 애플처럼 통합 생태계 구축을 위해 하드웨어로 진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글도 이러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피차이 CEO는 “우리는 AI(인공지능)와 서비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접목해 기술 개선을 이룬다는 독특한 접근법을 갖고 있다”며 “여러 하드웨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사용자를 위한 최첨단 컴퓨팅 파워를 구축하는 것이 비전”이라고 했다.
◇삼성과 협력+경쟁의 관계로
구글이 자체 하드웨어 생태계 구축에 나서면서 테크 업계에서는 삼성전자를 주목했다. 그동안 구글은 소프트웨어, 삼성전자는 하드웨어를 제공하는 식으로 협력해 왔는데 이제 경쟁 관계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피차이 CEO는 “삼성과는 작년보다 올해 더 좋은 조건에서 더 많은 협력을 했다”며 “앞으로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드웨어 비즈니스가 확대돼도 구글은 삼성으로부터 많은 부품을 구매하는 고객사”라며 “(협력과 경쟁의 공존은) 산업의 자연적인 진화(Evolution) 과정”이라고 했다.
피차이 CEO는 구글의 하드웨어 개발이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의 다양한 하드웨어 출시로 관련 개발이 늘어나고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차이 CEO는 “건강 추적 기능을 픽셀워치에 도입하면, 향후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워치 제조사들도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며 “이는 개발자들이 구글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더 관심을 갖도록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선 구글이 I/O에서 공개한 AR(증강현실) 안경 시제품인 스마트글라스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 제품은 말하는 상대방의 언어를 실시간 번역해 안경알에 비춰준다. 구글은 2013년 AR 기기 구글글라스를 선보였지만 시장 출시는 하지 않았다. 9년 만에 다시 스마트글라스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피차이 CEO는 “AI 기반 자연어 컴퓨터 처리가 가능해지며 스마트글라스에 대한 개념이 많이 변했다”며 “사람들이 기존보다 좀 더 편하게 착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정말 제품을 만들겠다는 관점에서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플랫폼 유지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필요”
세계 각국은 구글 등 빅테크에 대한 규제에 나서고 있다. 피차이 CEO는 기본적으로 규제에 대해 찬성한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교환, 경제적 연결 등 많은 이점이 있지만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앱 장터의 과도한 수수료 부과 문제에 대해선 “플랫폼을 유지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며 수수료 규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제공했고, 수만명의 엔지니어를 개발에 투입했다.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기기 판매에 따른 커미션도 요구하지 않는다”며 “지금껏 디자인 된 운영체계 중 가장 개방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앱 장터인 구글플레이스토어에 앱을 올리는 전체 중 97% 개발자는 수수료를 내지 않고, 99%의 개발자는 15% 이하의 수수료를 낸다는 말도 덧붙였다. 피차이 CEO는 “우리는 한국 규제기관과 협력해왔고 앞으로도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건설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