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대구시 북구 노원동 3공단 인근의 발달장애인 54명이 일하는 자그만 회사 개소식에 대기업 관계자들이 줄줄이 참석했다. 회사 이름은 ‘브라보비버 대구’. 라인플러스, 매일유업, 카카오엔터프라이즈, 한국투자증권, 카페노티드 등 10개 기업이 주주다. 대구가 1호 사업장으로 앞으로 전국에 100곳 이상 지을 예정인데, ‘지분 투자 좀 하게 해달라’는 대기업이 줄을 서 있다.
◇”선의 대신 철저히 비즈니스로”
이런 이례적인 사건을 만든 사람은 네이버 공동창업자 출신인 김정호(55) 베어베터 대표다. 그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삼성SDS 입사 1년 선배로 NHN한게임 대표, 게임산업협회장 등을 지낸 벤처 1세대다. 2009년 IT 업계를 떠나 2012년 5월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를 만들었다. 그의 철학은 “장애인 고용도 선의(善意)에 기대지 말고, 철저히 비즈니스 논리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현재 9000여 곳 기업·기관들이 장애인 고용 의무를 다하지 못해 매년 8000억원 가까운 과태료를 내고 있다. 반면 장애인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김 대표는 자폐·지적장애 등 발달장애인이 명함·쿠키·화환 등을 만들어 기업에 납품하면 고객사는 장애인 의무고용 미이행 과태료를 일부 탕감받는 모델로 베어베터를 창업했다. 품질로 경쟁하기 위해 남들 500만원짜리 명함 인쇄 기계를 쓸 때, 개인 재산을 털어 2억5000만원짜리 최고급 기계를 들이고 일류 제과·제빵 기술자를 초빙해 직원들을 가르쳤다. 그러자 고객사 500여 곳이 몰렸다. 베어베터 전체 직원 310명 가운데 80%가 장애인이다. 1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고, 철탑산업훈장까지 받았다.
‘브라보비버 대구’는 김 대표가 지방의 장애인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고안해낸 모델이다. 지방에 ‘콘도 계좌식’ 중증장애인 사업장을 만들어 대기업이 지분 투자액만큼 장애인 고용을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그는 기업에 “지분 투자를 하고 장애인 최저임금의 2배를 내는 게 장애인 고용 의무를 지키지 않아 내야 하는 과태료보다 비용이 덜 드는 데다, 장애인이 생산한 쿠키·사과 등도 투자한만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기업들이 ‘주주로 참여하겠다’고 줄을 섰다. 사업 계획을 듣고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도 100억원을 댔다.
그가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NHN(옛 네이버) 임원 출신으로 자폐증 아들을 둔 이진희 베어베터 공동대표가 “사회사업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한 게 계기가 됐다. 처음엔 이 대표가 성균관대 앞에 차린 발달장애인 복사가게에 전세금, 기계값을 대는 수준이었는데 1년에 5억원씩 적자가 나는 것을 보고 “적자를 줄여보겠다”고 직접 뛰어들었다. 그는 “착한 척하다 결국 착한 사람이 된 셈”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지난 10년간 베어베터에서 월급 한 푼 받지 않았다. 회사 이익은 모두 장애인 고용에 썼다. 그는 “장애인들이 모두 일자리를 찾아서 베어베터 같은 회사가 없어지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했다.
◇”카카오 사회환원 5兆, 아낌없이 사회에 쓸 것”
그는 최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재산 절반인 5조원을 출연해 만든 브라이언임팩트 재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김 대표는 월급은 물론 법인카드, 차량, 사무실 등 어떤 비용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진짜로 필요한 곳에 돈을 충분히 쓰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필요한 아이템이 생길 때마다 김 창업자의 승인을 받아 집행하기로 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지켜보니 사회사업이 사회문제 해결보다는 밥벌이가 된 사람도 많더라”며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을 과감히 버린 이들을 발굴해,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재단의 첫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