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각) 미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 AI 학회 CVPR의 전시장. /김성민 기자

“전공이 무엇인가요?”

22일(현지시각) 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모리얼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 AI 학회 ‘CVPR’. 애플의 부스를 찾으니 관계자가 이렇게 물었다. 그는 “이번 여름에 무엇을 할 것이냐”며 애플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직원이 건넨 안내 팸플릿엔 ‘우리는 당신과 같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AI(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고 적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올해 CVPR에서는 AI 인재 유치전이 벌어졌다. AI 관련 최신 연구 결과가 발표되는 학회에는 전 세계 AI 연구자와 대학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몰리는데, 이를 노린 것이다. 올해 CVPR엔 74개국에서 9000여명이 찾았다. 전체 중 28%인 2500여명이 학생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테크 분야에서 AI가 모든 기술의 근간을 이룰 것”이라며 “그만큼 AI 인재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했다.

22일(현지시각) 미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 AI 학회 CVPR에서 애플이 관람객에게 나눠줬던 채용 설명 팸플릿. /김성민 기자

◇높은 연봉에 완전 재택근무 등 내걸고 인재 유치

인플레이션 등 글로벌 경제 위기로 전 세계 테크 업체들은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채용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AI 인재 채용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학회에 참석해 전시 부스를 차린 기업들은 목걸이 명찰에 대학 소속이라고 적혀있는 학생들을 보면 적극적으로 말을 걸며 채용 계획을 안내했다. 이날 오후 구글 부스는 모션캡처(움직임 추적 기술) 아바타 기술을 시연하던 TV 모니터를 꺼놓은 채 채용 관련 안내에만 열을 올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우리는 연구자들이 자유롭고 다이내믹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자사의 복지와 근무 환경을 내세우며 관람객의 이목을 끄려는 업체도 있었다. 한국의 모션캡처 스타트업 ‘플라스크’는 자사 기술을 소개하는 팸플릿에 ‘원격 근무’ ‘유연한 근무 시간’ ‘스톡옵션’ 등을 명시하고 머신러닝(기계학습) 엔지니어를 찾고 있다고 적어 놨다. 머신러닝 박사후연구원을 모집하는 미 캘리포니아 말리부의 페퍼다인대학교는 “매우 경쟁력 있는 10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주겠다”고 밝혔다.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다양한 증정품을 준비한 곳도 많았다. 미국 AI 업체 스케일(Scale)은 현지시각 오후 4시가 되자 부스에서 맥주와 와인을 나눠줬다. 관람객들을 유인하기 위한 조치다. 한 업체는 추첨을 통해 아이패드를 준다며 연락처를 남겨 놓으라고 했다. 한 관람객은 “링크드인으로 이력서를 보내주면 맞는 포지션을 찾아주겠다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업체도 있다”고 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각) LG가 AI 학회 CVPR가 열리는 미 뉴올리언스에서 전 세계 대학 석박사 학생 200명을 초대해 인재채용 행사인 'AI 데이'를 개최했다. /LG

◇학생들 초청해 저녁 대접하며 홍보

기업들은 점심과 저녁에 학회장 인근 호텔에서 외부 행사를 개최하며 대학생들을 초대했다. LG는 21일(현지시각) 저녁 ‘LG AI 데이’를 열고 CVPR에 참석한 전 세계 대학 석·박사 200명을 초청해 스테이크를 대접했다. LG전자, 디스플레이, 에너지솔루션 등 계열사들이 돌아가면서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소개했고, 석박사 학생들에게 입사 지원을 요청했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2지망이라도 꼭 우리 회사를 지원해달라”고 읍소했다. 네이버와 소니도 컨벤션 센터 주변 호텔에서 자체 인재 초청 행사를 개최했다.

해외 기업들도 학회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비공개 미팅 자리에 초대했다. 서울대 박사과정에서 AI를 전공하는 한 학생은 “해외 기업들이 자기네 사업과 비슷한 연구를 하는 학생들에게 따로 연락해 비공개 식사 자리에 초대하고 있다”며 “인턴으로 참여해 자기네 연구팀과 함께 연구 실적을 쌓으라고 장려하더라”라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AI 인재

AI 인재 부족 현상은 전 세계적이다. 학회장에서 만난 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현재 자연어 처리, 음성 인식 등 분야는 연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기업들의 수요는 몰리는 편이라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대학 박사과정 인재들은 가장 가고 싶은 업체로 구글과 메타 등을 꼽았다. 이들 기업이 비전(시각) AI 연구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선호도는 다소 낮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치열한 AI 인재 경쟁에서 국내 기업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AI 연구 환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보형 교수는 “아무리 ‘손흥민급’ 인재를 데려온다고 해도 좋은 코치와 동료, 시스템이 없다면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고 동기도 부여받지 못한다”며 “우수 인재들에게 어떤 프로젝트를 맡기고, 어떤 연구 환경을 조성할 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조건 우수 인재를 데려온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